언어학
3단계: 언어는 어떻게 '의미'를 만드는가 — 의미론과 화용론의 세계
배경지식: 형식 너머의 의미
1단계에서 소쉬르의 이야기로 시작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그는 언어 기호가 **기표(signifier)**와 **기의(signified)**로 이루어지며, 그 관계가 자의적(arbitrary)이라고 했다. '사과'라는 소리가 둥근 빨간 과일을 가리키는 것은 자연의 필연이 아니라 관습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관찰에서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나온다: '사과'와 '과일'은 어떤 관계인가? '크다'와 '작다'는? 그리고 더 나아가, 누군가 "창문이 열려 있네"라고 말할 때, 그것이 단순한 관찰인지 "창문 닫아줘"라는 요청인지는 어떻게 아는가? 2단계에서는 단어가 형태소로 분해되고 문장이 수형도로 그려지는 언어의 **형식(form)**을 분석했다. 하지만 형식이 전부가 아니라는 문제가 계속 남아있었다. "나는 밥을 먹었다"와 "나는 음식을 섭취했다"는 수형도가 완전히 다르게 생겼지만 의미는 거의 같고, 반대로 "그는 은행에 갔다"는 수형도 하나에 의미가 두 개다. 이 불일치를 체계적으로 파고드는 분야가 **의미론(semantics)**이고, 실제 대화 맥락 속의 의미까지 다루는 것이 **화용론(pragmatics)**이다.
이 둘의 구분을 지금 확실히 잡아두자. 의미론은 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언어 표현 자체의 의미를 연구한다. 화용론은 사전에는 없지만 대화 상황이 만들어내는 의미를 연구한다. "오늘 날씨 참 좋다"는 의미론적으로는 날씨에 관한 진술이다. 하지만 소개팅 첫날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 말을 들으면? 화용론적으로는 "어디 같이 가자"는 제안이나 어색함을 피하는 대화 시작일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어휘 수준에서 시작해 문장 수준을 거쳐 실제 발화 행위의 수준까지, 네 개의 층위를 차례로 올라가며 의미의 세계 전체를 조망한다.
[노트 기록]
의미론(semantics): 언어 표현이 가지는 언어적·문자적 의미를 연구하는 분야
화용론(pragmatics): 맥락(context) 속에서 화자의 의도와 청자의 해석을 연구하는 분야
핵심 대조: 의미론 = what sentences mean / 화용론 = what speakers mean
1부: 어휘의미론 — 단어들 사이의 관계망
단어가 홀로 독립적으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소쉬르가 **가치(valeur)**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듯이, 단어의 의미는 언어 체계 안에서 다른 단어들과의 관계로 결정된다. 'sheep(양)'이 영어에서 갖는 의미는 프랑스어 'mouton'과 다른데, 영어에는 'mutton(양고기)'이 따로 있어서 'sheep'이 '살아있는 양'에만 쓰이는 반면 'mouton'은 그 두 가지를 모두 포괄하기 때문이다. 어떤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그 언어에 어떤 다른 단어들이 있는지에 달려 있다. 이것이 **어휘의미론(lexical semantics)**의 출발점이며, 이 관계의 종류를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것이 이 섹션의 과제다.
어휘의미론자들은 단어의 의미가 더 작은 단위, 즉 **의미 자질(semantic features)**로 분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남자', '여자', '소년', '소녀'를 각각 [+인간], [+성인], [+남성]이라는 세 가지 이분 자질(binary feature)의 조합으로 분석하면, '남자'는 [+인간, +성인, +남성], '소녀'는 [+인간, -성인, -남성]이 된다. 2단계에서 형태소의 음운 자질을 + 와 -로 표시했던 방식을 기억한다면, 이것은 그 방법론의 의미론 버전이다. 이 분석이 아래에서 나올 동의어, 반의어, 상하위어를 설명하는 내부 구조가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동의어(synonymy)**는 표현 형식은 다르지만 의미가 같거나 매우 유사한 단어들의 관계다. '죽다, 사망하다, 돌아가시다, 숨지다, 뒤지다'를 생각해보라. 이 단어들은 모두 생명이 끝나는 사건을 가리키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와 "할머니가 뒤졌어요"를 누군가의 장례식에서 말했을 때의 반응이 같겠는가? 언어학은 이 차이를 **외연(denotation)**과 **내포(connotation)**의 구분으로 설명한다. 외연은 단어가 지시하는 객관적 대상이나 사실이고, 내포는 그 단어에 결부된 감정적·문화적·사회적 연상이다. 위의 단어들은 외연은 같지만 내포가 전혀 다르다. 그래서 현대 언어학의 일반적 입장은 완전한(절대적) 동의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항상 문체적, 감정적, 또는 사용 맥락의 차이가 있다.
[노트 기록]
동의어(synonymy): 형식은 다르지만 의미가 같거나 유사한 단어들의 관계
외연(denotation): 단어가 지시하는 객관적 대상이나 사실
내포(connotation): 단어에 결부된 감정적·문화적 의미
→ 완전한 동의어는 없다: 항상 문체(style), 감정, 격식 수준의 차이가 존재
**반의어(antonymy)**는 의미가 반대되는 단어들의 관계인데, 여기서 '반대'가 실제로는 세 종류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는 **상보적 반의어(complementary antonyms)**로, '살다/죽다', '참/거짓', '기혼/미혼'처럼 A가 아니면 무조건 B인 이분법적 대립이다. '조금 기혼'이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둘째는 **점진적 반의어(gradable antonyms)**로, '크다/작다', '빠르다/느리다'처럼 연속적인 척도 위에 있어서 "매우 크다", "조금 빠르다" 같은 정도 표현이 가능하며, '크지 않다'가 반드시 '작다'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핵심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 지대가 존재한다. 셋째는 관계적 반의어(relational antonyms) 혹은 역의어(converses)로, '사다/팔다', '가르치다/배우다', '위/아래'처럼 같은 관계를 두 관점에서 서술하는 쌍이다. A가 B에게 팔면 B는 A에게서 사는 것으로, 사건은 하나인데 주어의 관점이 뒤집힌 것이다. 스스로 생각해보자: '남편/아내'와 '의사/환자'는 각각 세 유형 중 어디에 속하는가?
**상하위어(hyponymy)**는 의미가 포함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장미'는 '꽃'의 **하위어(hyponym)**이고, '꽃'은 '장미'의 **상위어(hypernym)**다. '장미', '튤립', '국화'처럼 같은 상위어를 공유하는 단어들은 **공하위어(co-hyponyms)**다. 의미 자질의 관점에서 보면, 하위어는 상위어가 가진 모든 자질에 추가 자질들을 더 가진다. '장미'는 '꽃'의 모든 자질을 포함하면서 가시, 특정 형태 같은 자질을 더 가진다. 이것이 중요한 논리적 결과를 낳는데, "장미가 아름답다"고 말하면 자동으로 "꽃이 아름답다"가 성립한다. 장미는 꽃의 일종이므로. 이것이 다음 섹션에서 다룰 함의(entailment)와 직접 연결되니 기억해두라. 인지언어학자 엘리너 로쉬(Eleanor Rosch)의 연구에서 나온 개념인 **기본 수준 범주(basic level category)**도 여기서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어제 뭐 먹었어?"라는 질문에 "음식 먹었어"라고 답하는 사람은 없다. 보통 "피자 먹었어"처럼 중간 수준의 하위어를 쓴다. 지나치게 상위어도, 지나치게 하위어도 아닌 그 '자연스러운 중간 수준'이 기본 수준 범주다.
마지막으로 **다의어(polysemy)**는 하나의 단어 형식이 관련된 여러 의미를 가지는 현상이다. 이때 **동음이의어(homonymy)**와 구분하는 것이 핵심이다. '배(복부)', '배(과일)', '배(선박)'는 형식은 같지만 역사적 어원이 전혀 다르고 의미 사이에 연관도 없다. 이것이 동음이의어다. 반면 '손(신체 기관)', '손이 모자라다(인력)', '손을 봐야겠다(수리)', '손이 크다(씀씀이)'는 모두 '쥐고 잡는 신체 기관'이라는 원형 의미에서 은유적·환유적으로 확장된 것들이다. 이것이 다의어다. 레이코프와 존슨(Lakoff & Johnson, 1980)의 **개념적 은유 이론(Conceptual Metaphor Theory)**은 이런 의미 확장이 인간의 신체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고 설명한다. 사전에서 '손'의 표제어를 찾으면 하나의 항목 안에 여러 의미 번호로 수록되어 있고, '배(복부)'와 '배(과일)'는 별도 표제어로 수록되는 이유가 바로 이 구분 때문이다.
[노트 기록]
상하위어: 상위어(hypernym, 예: 과일) ← 하위어(hyponym, 예: 사과) 포함 관계
다의어(polysemy): 하나의 어원에서 의미가 방사형으로 확장된 경우 (하나의 표제어)
동음이의어(homonymy): 형식은 같지만 어원이 다르고 의미 연관 없는 경우 (별도 표제어)
기본 수준 범주: 중간 추상화 수준의 하위어, 일상 언어 사용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단위
2부: 문장의미론 — 명제들 사이의 논리
개별 단어의 의미에서 이제 문장 사이의 의미 관계로 올라가보자. 2단계에서 수형도를 통해 문장의 통사 구조를 분석했다면, 지금은 그 구조로 이루어진 명제들이 서로 어떤 논리적 관계에 있는지를 다룬다. 이 영역은 프레게(Frege)와 러셀(Russell) 같은 수리논리학자들이 언어를 논리로 분석하려 한 시도에서 유래했으며, 현대 **형식의미론(formal semantics)**의 기초가 된다. 여기서 배울 세 개념—함의, 전제, 모순—은 나중에 광고와 정치 언어를 분석할 때 매우 강력한 도구가 된다.
**함의(entailment)**는 P라는 문장이 참일 때 Q라는 문장도 반드시 참이어야 하는 관계다. "영희는 고등학생이다" → "영희는 학생이다". 전자가 참이면 후자도 반드시 참이다. 왜냐하면 1부에서 배운 상하위어 관계에서, '고등학생'은 '학생'의 하위어이기 때문이다. 어휘의미론과 문장의미론이 이렇게 연결된다. 함의의 핵심 특성 두 가지를 기억하라. 첫째는 단방향성: P→Q가 성립해도 Q→P는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 "영희는 학생이다"가 참이라도 "영희는 고등학생이다"는 참이 아닐 수 있다(대학생일 수도 있으니까). 둘째는 부정에 살아남지 못함: P가 거짓이 되면, 즉 "영희는 고등학생이 아니다"가 되면, Q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수 없게 된다. 이 두 번째 특성이 바로 다음에 나오는 전제와의 결정적 차이가 된다.
**전제(presupposition)**는 어떤 문장이 발화되기 위해 화자와 청자가 미리 공유하고 있어야 하는 배경 가정이다. "영희는 피아노 치는 것을 그만뒀어"라는 문장을 들으면 우리는 자동으로 '영희가 이전에 피아노를 쳤다'는 것을 전제로 받아들인다. 이 가정이 없으면 문장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전제의 가장 강력한 특성은 **부정에 살아남는다(survives negation)**는 것이고, 이것이 전제와 함의를 구분하는 핵심 테스트다. "영희는 피아노 치는 것을 그만뒀어"의 전제는 "영희가 전에 피아노를 쳤다"인데, 이 문장을 부정해서 "영희는 피아노 치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어"로 만들어도 전제는 그대로 살아있다. 영희가 전에 피아노를 쳤다는 배경 사실은 부정에 영향받지 않는다. 이것이 함의와의 결정적 차이다. 함의는 문장을 부정하면 사라지지만, 전제는 살아남는다.
이 특성이 실제 언어 사용에서 얼마나 강력하게 악용될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 "왜 대통령은 거짓말을 했나요?"라는 질문은 이미 '대통령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전제로 깔아놓고 있다. 그 전제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질문 형식 안에 묻혀버린다. 법정에서 **유도 질문(leading question)**이 허용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전제의 이 특성 때문이다. 전제를 만들어내는 언어 장치들도 알아두어야 한다. 한정 명사구("그 왕")는 그 왕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반복 동사("다시 오다")는 이전에 왔다는 것을 전제한다. 사실 동사("알다", "깨닫다", "후회하다")는 그 내용이 사실임을 전제한다. "영수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영수가 실제로 틀렸다는 것을 전제한다.
**모순(contradiction)**은 두 문장이 동시에 참일 수 없는 관계다. 이때 **반의 관계(contrariety)**와 구분해야 한다. 두 문장이 동시에 참일 수 없으면서도 둘 다 거짓일 수는 있는 경우가 반의 관계다. "그 드레스는 하얗다"와 "그 드레스는 검다"는 동시에 참일 수 없지만, 둘 다 거짓일 수 있다(빨간 드레스일 수 있으므로). 진정한 모순은 한쪽이 참이면 나머지가 반드시 거짓이고, 중간 지대가 없는 경우다. 특히 **분석적 모순(analytic contradiction)**이라는 특별한 경우가 있다. "미혼인 남자가 결혼했다"는 경험적 사실이 아니라 '미혼'이라는 단어의 의미 자체가 '결혼하지 않았음'을 포함하기 때문에, 단어의 의미만으로 모순임을 알 수 있다.
[노트 기록]
함의(entailment): P→Q, P가 참이면 Q도 반드시 참 / 부정 시 소멸
전제(presupposition): 발화의 배경 가정 / 부정해도 살아남음
모순(contradiction): 두 문장이 동시에 참일 수 없음
전제 vs 함의 테스트: 문장 부정 후 관계가 살아남으면 전제, 사라지면 함의
3부: 화용론 — 맥락이 의미를 창조한다
지금까지는 언어 표현이 가진 고정된 의미를 분석했다. 이제는 그 표현이 실제 대화 맥락 속에서 어떻게 다른 의미를 만들어내는지로 넘어간다. 같은 문장도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알지만, 이것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려 한 사람이 영국의 철학자 **H. P. 그라이스(Herbert Paul Grice)**다. 그의 1975년 논문 「Logic and Conversation」은 언어철학과 언어학 모두에 혁명적 영향을 미쳤다.
그라이스는 정상적인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따르는 근본 원칙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협력 원리(Cooperative Principle)**다: 대화의 목적과 방향에 맞게, 필요한 만큼 기여하라. 이 원리는 네 개의 하위 **격률(maxims)**로 구성되며, 각각 사람들이 대화에서 무의식적으로 지키는 규범을 명시한다.
**양의 격률(Maxim of Quantity)**은 필요한 만큼만 정보를 제공하라는 것이다. 너무 적게도, 너무 많게도 안 된다. "서울이 어디 있어요?"라는 질문에 "지구에 있어요"라고 답한다면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 격률을 위반한 것이다. **질의 격률(Maxim of Quality)**은 참이라고 믿는 것만 말하고, 증거가 없는 것은 주장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이 대화의 근본 전제다. **관련성의 격률(Maxim of Relation)**은 지금 화제와 관련 있는 말만 하라는 것으로, 영어로는 'Be relevant' 세 글자로 요약된다. **양태의 격률(Maxim of Manner)**은 명료하게, 모호함과 중의성을 피해, 간결하게, 순서에 맞게 말하라는 것이다.
[노트 기록]
협력 원리(Cooperative Principle) — Grice(1975)
4격률: 양(Quantity) / 질(Quality) / 관련성(Relation) / 양태(Manner)
암기: "양질관태" 또는 QQRM
이제 이 이론의 핵심이 나온다. 실제 대화에서 사람들은 이 격률들을 항상 지키지 않는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격률을 **의도적으로, 공공연하게 위반(flouting)**할 때 새로운 의미가 생성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대화 함축(conversational implicature)**이다. 친구가 콘서트에 같이 가자고 했을 때 "나 그날 세탁기 돌려야 해"라고 대답했다고 하자. 문자적 의미로는 빨래할 예정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왜 '거절'로 해석하는가? 관련성의 격률에 따라 화자의 발화는 콘서트 제안과 관련 있어야 하는데, 세탁기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청자는 "왜 저런 말을 하는 걸까?"를 추론하는 과정을 거쳐 '거절'이라는 함축에 도달한다. 이 추론 과정이 바로 **함축 계산(implicature derivation)**이다.
함축에는 두 가지 중요한 특성이 있다. 첫째, 소거 가능성(cancellability): "나 그날 세탁기 돌려야 해 — 그래도 갈 수 있어"라고 추가하면 함축이 사라진다. 이것이 함축을 함의와 구분하는 또 하나의 테스트다. 함의는 소거할 수 없지만 함축은 소거할 수 있다. 둘째, 계산 가능성(calculability): 함축은 무작위가 아니라 협력 원리로부터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 또한 **일반화 대화 함축(Generalized Conversational Implicature)**과 **특수화 대화 함축(Particularized Conversational Implicature)**의 구분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나는 어제 파티에서 한 여자를 만났어"라고 말하면 특별한 맥락 없이도 자동으로 '그 여자가 화자의 여자친구가 아닌 낯선 사람'이라는 함축이 생긴다. 여자친구라면 "한 여자"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양의 격률에서 추론되는 것이다. 이것이 일반화 함축이다. 반면 특정 맥락에서만 발생하는 함축은 특수화 함축이다.
4부: 화행이론 — 언어는 행동이다
언어로 우리는 정보를 전달하기도 하지만, 약속하고, 명령하고, 사과하고, 결혼 서약을 하기도 한다. 언어가 단순한 정보 전달 도구를 넘어 **행동(action)**임을 이론화한 사람이 영국의 철학자 **J. L. 오스틴(John Langshaw Austin)**이다. 그의 강의를 모아 출판한 『How to Do Things with Words』(1962)는 언어철학과 언어학의 지형을 바꿨다.
오스틴은 처음에 발화를 두 가지로 나눴다. **진술문(constatives)**은 세상의 상태를 기술하며 참/거짓을 판단할 수 있는 발화이고("하늘은 파랗다"), **수행문(performatives)**은 그 발화 자체가 행동을 수행하는 발화다. "나는 너에게 이 시계를 유언으로 남긴다." "본 법원은 피고에게 3년 징역을 선고한다." "나는 당신과 결혼할 것을 서약합니다." 이런 발화들은 참/거짓이 아니라 **적절함/부적절함(felicitous/infelicitous)**으로 평가된다. 판사가 아닌 사람이 "3년 징역을 선고한다"고 말해도 판결이 되지 않는다. 수행문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적절한 맥락, 권한을 가진 인물, 적절한 절차가 있어야 한다. 오스틴은 이 조건들을 **적정 조건(felicity conditions)**이라 불렀다. 그런데 오스틴 자신이 이 구분의 한계를 인식했다. "나는 내일 올 거야"는 진술문처럼 보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약속이다. 결국 모든 발화가 어떤 의미에서는 수행적이라는 깨달음이 그를 더 정교한 이론으로 이끈다.
오스틴의 최종 이론은 모든 발화에 동시에 세 겹의 행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언표 행위(Locutionary act)**는 소리와 의미를 가진 발화 자체를 생산하는 행위다. 특정 음성을 내고, 문법적 문장을 구성하고, 지시 대상을 가리키는 것. "창문이 열려있다"고 소리 내어 말하는 것 자체가 언표 행위다. **언표수반 행위(Illocutionary act)**는 그 발화를 함으로써 화자가 수행하는 사회적 행위다. 약속, 요청, 명령, 경고, 사과, 질문 등이 이것이다. "창문이 열려있다"는 상황에 따라 단순 관찰일 수도 있고, "창문 닫아줘"라는 요청일 수도 있고, "그러니까 춥지"라는 불평일 수도 있다. 오스틴의 제자 **존 설(John Searle, 1969)**은 언표수반 행위를 다섯 가지로 체계화했다: **단언(assertive)**은 화자가 세상의 상태를 진술하는 것, **지시(directive)**는 청자에게 행동을 요청하거나 명령하는 것, **위임(commissive)**은 화자가 미래 행동을 약속하는 것, **표현(expressive)**은 감사, 사과, 축하 등 화자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는 것, **선언(declarative)**은 세상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발화(결혼 선언, 해고 통보)다. 마지막으로 **언향 행위(Perlocutionary act)**는 발화가 청자에게 미치는 실제 효과다. "창문이 열려있다"는 말이 청자를 창문 쪽으로 걸어가게 만든다면, 그 행동 변화가 언향 행위다. 언향 행위는 화자가 의도한 것일 수도, 의도치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이 세 층위를 하나의 예시로 통합해보자. 교사가 수업 중 시끄러운 학생에게 "앞에 사람들 수업에 방해되지 않나?"라고 말한다. 언표 행위는 의문문 발화를 생산한 것이고, 언표수반 행위는 '조용히 하라'는 명령(지시)이고, 언향 행위는 학생이 실제로 조용해지는 것이다. 표면적 형식(의문문)과 실제 언표수반력(명령)이 불일치하는 이런 경우를 **간접화행(indirect speech act)**이라 한다. 일상 대화에서 직접 명령("조용히 해")보다 간접화행이 더 예의 있게 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이것은 화행과 화용론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노트 기록]
수행문(performative): 발화 자체가 행위를 수행하는 발화 / 적정 조건(felicity conditions) 필요
언표 행위(Locutionary): 소리+의미+지시의 발화 생산
언표수반 행위(Illocutionary): 발화로 수행되는 사회적 행위 (화자의 의도)
언향 행위(Perlocutionary): 발화가 청자에게 미치는 실제 효과 (결과)
설의 5분류: 단언 / 지시 / 위임 / 표현 / 선언
간접화행: 표면 형식과 언표수반력이 불일치하는 경우
이론 연결: 네 층위의 지도
여기까지 온 당신은 이제 의미를 분석하는 네 가지 도구를 모두 갖췄다. 이 도구들이 어떻게 하나의 지도를 이루는지 정리하자. 어휘의미론은 단어 수준에서 의미의 원소들(자질)과 단어 간 관계망을 제공한다. 문장의미론은 그 단어들이 결합한 명제들 사이의 논리적 관계를 다루며, 1단계의 기호 체계와 2단계의 통사 구조가 어떻게 의미를 구성하는지를 보여준다. 화용론은 고정된 언어 의미 너머로 맥락이 어떻게 추가 의미를 만들어내는지를 설명하고, 화행이론은 언어가 단순한 정보 교환이 아니라 사회적 행위임을 보여준다. 이 네 층위가 모두 만나는 현장이 바로 오늘의 프로젝트, 광고 언어다. 광고는 최소한의 언어로 최대한의 의미를 만들어내야 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이 모든 메커니즘을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프로젝트: 광고 언어의 화용론적 분석
아래 다섯 개의 광고 텍스트에 대해 주어진 분석 질문들에 답하라. 정답은 없다. 이론 도구들을 직접 적용해 분석하는 것이 목표이며, 약 40분이 소요된다. 분석할 때는 반드시 이론 용어를 명시적으로 사용하라.
[광고 1] 음료 광고: "365일 중 단 하루, 자신을 위한 날. 오늘, ○○ 주스를 마셔보세요."
이 광고에서 '단 하루'라는 표현이 전제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라. 그 전제를 부정 테스트로 확인하고(즉, 문장을 부정형으로 바꿔도 전제가 살아남는지), 이 전제가 소비자에게 만들어내는 심리적 효과를 설명하라. 또한 "오늘, ○○ 주스를 마셔보세요"는 어떤 언표수반 행위인지, 설의 다섯 가지 분류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밝히고, 이 광고 전체가 그라이스의 어떤 격률을 어떻게 활용해 어떤 함축을 만들어내는지 분석하라.
[광고 2] 자동차 광고: "남들과 같아지고 싶지 않은 당신을 위해."
이 문구에 내포된 전제를 찾고, 문장을 부정형으로 바꿔 그 전제가 살아남는지 확인하라. 그 결과를 이용해 전제와 함의의 차이를 이 예시를 통해 설명하라. 또한 '남들과 같아지고 싶지 않은'이라는 수식어가 이 자동차의 구매자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상하위어 관계와 의미 자질의 관점에서 분석하라. 이 광고가 소비자에게 노리는 언향 행위는 무엇인가?
[광고 3] 다이어트 식품 광고: "3주 만에 5kg. 고객의 70%가 경험했습니다."
이 광고는 겉으로는 그라이스의 질의 격률과 양의 격률을 지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떻게 그 격률들을 위반하거나 악용하고 있는가? 특히 '70%'라는 수치가 말하고 있지 않은 것, 즉 양의 격률이 요구하는 충분한 정보를 어떻게 생략하고 있는지 분석하라. 나아가, "3주 만에 5kg"이라는 표현이 "3주 만에 5kg을 뺄 수 있다"를 함의하는가, 전제하는가, 아니면 함축하는가? 세 개념의 차이를 이 예시로 구체적으로 설명하라.
[광고 4] 보험 광고 시나리오: 한 아버지가 딸에게 말한다: "아빠가 없어도 너는 걱정 없어." [보험사 로고]
"아빠가 없어도 너는 걱정 없어"는 어떤 언표수반 행위인가? 단순 진술인가, 약속인가, 그 외의 것인가? 오스틴의 적정 조건(felicity conditions)을 적용해서 이 발화가 수행문으로서 성립하기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분석하라. 또한 '아빠가 없어도'라는 조건절이 무엇을 전제하고 있는지 찾고, 이 전제가 광고의 정서적 효과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설명하라. 마지막으로 "아빠가 없어도"를 "아버지가 부재하더라도"로 바꿀 경우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외연/내포의 개념으로 분석하라.
[광고 5] 패스트푸드 광고: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요." [버거 이미지]
이 문장에는 버거에 대한 직접적 언급이 없다. 그럼에도 이것이 버거 광고로 기능하는 이유를 그라이스의 격률 중 하나를 사용해 화용론적으로 설명하라. 즉, 어떤 격률이 작동하기 때문에 청자가 이 문장과 버거 이미지를 연결하는 함축을 계산할 수 있는가? 또한 "고생했어요"는 설의 분류에서 어떤 언표수반 행위이고, 그 선택이 광고의 전략적 목적(소비자와의 관계 형성)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마지막으로 이 광고를 "내일도 ○○에서 드세요"라는 직접적 광고와 비교할 때, 어느 쪽이 협력 원리의 **격률 위반(flouting)**을 더 창의적으로 활용한 것인지, 그 이유를 논하라.
[종합 도전 문제] 위 다섯 개 광고 중 가장 흥미로운 것 하나를 골라서, 다음 세 부분으로 구성된 미니 분석 보고서를 작성하라: ① 이 광고의 화용론적 핵심 전략 요약(3-4문장), ② 함축 또는 화행이론 중 하나를 집중적으로 적용한 분석, ③ 이 전략이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비판적 평가. 이 마지막 질문이 이번 단계의 평가에서 '광고 분석 보고서(50점)' 항목의 핵심 뼈대가 된다.
이 프로젝트를 마치면, 당신은 앞으로 TV 광고를 보거나 정치인의 발언을 들을 때마다 "이 발화의 언표수반 행위는 무엇인가?", "여기서 어떤 전제가 깔려 있는가?", "어떤 함축을 노리는가?"라는 질문이 자동으로 떠오를 것이다. 언어학자의 눈은 '무슨 말을 했는가'가 아니라 '그 말로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묻는다. 그 눈을 갖게 된 것이 3단계의 진짜 성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