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5단계: 윤리학의 지형도 — 도덕은 발견하는가, 발명되는가
I. 배경지식: 도덕은 어디서 오는가?
친구를 때리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런데 "때리는 것은 나쁘다"는 사실은 정확히 어디서 오는가? 부모님이 가르쳐줬기 때문에? 법이 금지하기 때문에? 아니면 어딘가에 "때리는 것은 나쁘다"는 진리가 우리의 믿음과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 질문에 답하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메타윤리학(meta-ethics) 의 영역에 들어선 것이다. 1단계에서 배웠듯 철학은 경이(thaumazein)에서 시작한다고 했는데, 그 경이를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곳이 바로 윤리다 — "살인이 나쁘다는 것이 왜 사실인가?"는 "왜 나는 존재하는가?"만큼이나 근원적인 물음이다.
윤리학에는 세 개의 층위가 있다. 첫째, 메타윤리학(meta-ethics) 은 "도덕적 사실은 존재하는가?", "도덕적 언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처럼 도덕 자체의 본성을 캐묻는 가장 근본적인 층이다. 둘째, 규범윤리학(normative ethics) 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옳은 행동의 기준은 무엇인가?"처럼 실제 도덕 규범을 묻는다. 셋째, 응용윤리학(applied ethics) 은 낙태, AI, 기후변화처럼 구체적인 현실 문제에 윤리 이론을 적용한다. 이 세 층위는 건물의 기초-골조-인테리어처럼 아래에서 위로 지어진다 — 메타윤리 없이 규범윤리를 말하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셈이다. 4단계에서 배운 논리학이 논증의 형식을 다뤘다면, 이번 윤리학은 논증의 내용을 다룬다.
[노트 기록] 윤리학의 3층위: 메타윤리(도덕의 본성) → 규범윤리(도덕의 기준) → 응용윤리(현실 적용), 반드시 이 순서로 이해해야 함.
II. 메타윤리학: 도덕 사실은 실재하는가?
핵심 질문은 하나다: "살인이 나쁘다"는 문장은 "지구는 둥글다"처럼 객관적 사실을 기술하는 문장인가, 아니면 "나는 초콜릿이 싫다"처럼 주관적 태도를 표현하는 문장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크게 두 진영으로 나뉜다.
도덕 실재론 (Moral Realism)
도덕 실재론(moral realism) 은 도덕적 사실이 우리의 믿음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마치 수학처럼 — "2+2=4"는 누가 믿든 믿지 않든 참이듯, "고문은 나쁘다"도 우리가 인정하든 안 하든 참이라는 것이다. 실재론 안에서도 두 흐름이 있다. 도덕 자연주의(moral naturalism) 는 도덕적 속성이 자연적 속성(쾌락, 고통, 번영 등)과 동일하거나 그것으로 환원 가능하다고 본다 — "좋음이란 쾌락의 극대화다"라고 정의하면 도덕도 경험적으로 연구 가능한 영역이 된다. 반면 조지 에드워드 무어(G.E. Moore)는 1903년 Principia Ethica에서 도덕 비자연주의(moral non-naturalism) 를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좋음(good)"은 노란색처럼 단순하고 정의 불가능한 성질이다 — 좋음을 자연적 속성으로 환원하려는 모든 시도는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 를 범한다. 예를 들어 "좋음은 쾌락이다"라고 정의한다면, "쾌락은 좋다"는 문장은 "쾌락은 쾌락이다"가 되어버린다 — 뭔가 틀렸다는 직관이 생기지 않는가?
도덕 반실재론 (Moral Anti-Realism)
도덕 반실재론 은 도덕적 사실이 우리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가장 도발적인 버전은 존 레슬리 매키(J.L. Mackie)의 오류 이론(error theory) 이다. 그의 1977년 저작 Ethics: Inventing Right and Wrong에 따르면, 우리가 하는 도덕적 주장들은 객관적 사실을 기술하려 하지만 그런 사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모두 거짓이다. "고문은 나쁘다"는 "유니콘은 뿔이 있다"처럼 참조 대상이 없는 문장이다. 급진적이지 않은가 — 이 주장이 옳다면 우리의 모든 도덕적 믿음은 체계적 착각이 된다.
더 정교한 반실재론은 표현주의(expressivism) 다. A.J. 에이어(A.J. Ayer)의 정서주의(emotivism) 에 따르면, "고문은 나쁘다"는 사실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고문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 마치 "고문!!"이라며 혐오의 감탄사를 내뱉는 것처럼. 사이먼 블랙번(Simon Blackburn)은 이를 발전시켜 준실재론(quasi-realism) 을 제시했는데, 우리가 도덕에 대해 마치 객관적 사실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스스로 생각해보자: 만약 도덕이 실재하지 않는다면, "히틀러는 나쁘다"는 말은 단지 개인적 취향의 표현일 뿐인가? 이 직관적 불편함이 실재론의 호소력의 원천이다. 그런데 반실재론자는 이렇게 반문한다: "도덕 사실이 실재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지각'하는가? 어떤 감각 기관으로?" — 이것이 메타윤리학의 핵심 긴장이다.
[노트 기록] 메타윤리 지형도: 실재론(도덕 사실 존재) → 자연주의 / 비자연주의 / 반실재론(도덕 사실 없음) → 오류이론(Mackie) / 표현주의(Ayer, Blackburn) / 상대주의.
III. 규범윤리학: 세 개의 나침반
메타윤리학이 도덕의 본성을 묻는다면, 규범윤리학은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서양 윤리학에는 이 물음에 답하는 세 개의 거대한 전통이 있다: 공리주의, 의무론, 덕윤리. 이 셋은 같은 질문에 완전히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공리주의 (Utilitarianism): 결과가 전부다
공리주의의 핵심은 단순하다: 옳은 행동이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산출하는 행동이다.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은 Introduction to the Principles of Morals and Legislation(1789)에서 이 원칙을 체계화했다. 벤담에게 도덕의 유일한 통화는 쾌락(pleasure)과 고통(pain)이며, 그는 쾌락 계산법(hedonic calculus) 으로 쾌락의 강도·지속성·확실성·범위 등을 계량화해 어떤 행동이 더 많은 쾌락 총량을 낳는지 계산할 수 있다고 했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Utilitarianism(1863)에서 벤담을 정교화했다. 밀은 쾌락에 질적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 "만족한 돼지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그 유명한 문장처럼. 고급 쾌락(시, 철학, 음악)은 저급 쾌락(단순한 신체적 만족)보다 질적으로 우월하다. 현대에 이르면 피터 싱어(Peter Singer)의 선호 공리주의(preference utilitarianism) 가 있는데, 쾌락과 고통 대신 각 주체의 선호(preference) 충족을 최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 논리를 동물권까지 확장했다 — 고통을 느끼는 모든 존재의 이익은 동등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리주의의 치명적 약점은 무엇일까? 스스로 먼저 생각해보자. 한 사람의 장기를 빼앗아 다섯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공리주의자는 그것을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것이 유틸리티 몬스터(utility monster) 문제와 연결되는, 정의(justice)의 직관과의 충돌이다. 공리주의는 개인의 권리를 집합적 행복 앞에서 희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도덕 직관과 마찰한다.
의무론 (Deontology): 결과보다 의무
의무론의 출발점은 공리주의와 정반대다: 행동의 옳고 그름은 결과가 아니라 행동 자체의 성질, 즉 그것이 의무를 따르는가에 달려 있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Groundwork of the Metaphysics of Morals(1785)에서 가장 체계적인 의무론을 전개했다. 2단계에서 칸트의 비판철학을 배웠을 텐데 — 칸트가 경험에서 독립적인 선험적 지식의 가능성을 주장했듯, 윤리에서도 도덕 법칙이 경험이 아니라 순수 이성에서 나온다고 했다.
칸트의 핵심 개념은 정언 명령(categorical imperative) 이다. "정언(定言)"이란 조건이 없다는 뜻이다 — "행복하고 싶다면 이렇게 해라"는 조건부 가언 명령(hypothetical imperative)이지만, "이렇게 해야 한다"는 조건 없는 절대 명령이 정언 명령이다. 그 두 공식이 핵심이다.
보편화 공식(Formula of Universal Law): "너의 행동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 내가 하는 행동을 모든 사람이 한다면 어떻게 될까를 물어보라는 것이다. "나는 필요할 때 거짓 약속을 한다"는 준칙을 보편화하면? 모든 사람이 거짓 약속을 하는 세계에서는 약속이라는 개념 자체가 붕괴한다 — 따라서 이 준칙은 보편화 불가능하고, 거짓 약속은 도덕적으로 잘못됐다. 인격성 공식(Formula of Humanity): "인간을 언제나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고,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라." 각 사람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존엄성(dignity) 을 가진 목적이다. 앞서 본 "장기 적출" 사례를 다시 생각해보자 — 공리주의는 허용할 수 있지만, 칸트는 단호히 거부한다. 그 사람을 타인의 생존을 위한 순수한 수단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칸트의 의무론의 문제는 절대주의적 경직성에 있다. 거짓말은 절대 안 된다는 원칙을 고수할 때, 나치가 유대인을 숨겨준 곳을 물어본다면? 그 유대인을 배신해야 하는가? 이 딜레마는 칸트 윤리학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노트 기록] 공리주의 vs 의무론: 공리주의 = 결과 중심(최선의 결과를 낳는 행동이 옳다) / 의무론 = 원칙 중심(의무를 따르는 행동이 옳다) / 칸트의 정언 명령 2공식: ① 보편화 가능성 ② 인격 존중.
덕윤리 (Virtue Ethics):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공리주의와 의무론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를 묻는다면, 덕윤리(virtue ethics) 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이 전통의 뿌리는 3단계에서 동양철학 비교 맥락에서 스친 아리스토텔레스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Nicomachean Ethics(기원전 4세기)에서 인간의 목적은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 — 번영, 행복, 좋은 삶 — 라고 주장했다. 에우다이모니아는 단순한 쾌락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고유한 기능(이성적 활동)을 탁월하게 발휘하는 상태이며, 이 탁월함을 가능케 하는 것이 덕(virtue, aretē) 이다.
덕은 어떻게 정의되는가?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덕은 두 극단 사이의 중용(mesotēs, the mean) 이다. 용기는 비겁함과 무모함 사이의 중용이고, 관대함은 인색함과 낭비 사이의 중용이며, 정직은 기만과 과도한 솔직함 사이의 중용이다. 중용이 단순한 산술적 중간값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적절한 지점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 그리고 이 적절한 지점을 알아보는 능력이 실천적 지혜(phronesis, practical wisdom) 다. 덕윤리는 20세기에 G.E.M. 앤스컴(Anscombe)의 1958년 논문 "Modern Moral Philosophy"와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의 After Virtue(1981)를 통해 부활했다. 매킨타이어는 현대 도덕 담론이 혼란스러운 이유가 덕과 공동체라는 맥락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덕윤리의 한계도 생각해보자: 어떤 덕이 보편적인가? 문화마다 덕목이 다르지 않은가? 그리고 구체적 딜레마 상황에서 "용기 있게 행동하라"는 처방은 지나치게 모호하지 않은가?
[노트 기록] 덕윤리 핵심: 질문은 "어떤 행동?"이 아니라 "어떤 사람?" / 에우다이모니아 = 인간의 번영 / 덕 = 두 극단 사이의 중용 / 실천적 지혜(phronesis) = 상황에 맞는 중용을 알아보는 능력.
이제 세 이론을 하나의 사례에 동시에 적용해보면 차이가 선명해진다. 고전적인 트롤리 문제(Trolley Problem) — 트롤리가 5명을 향해 달려온다. 레버를 당기면 1명이 있는 다른 선로로 방향이 바뀐다. 레버를 당겨야 하는가? 공리주의자는 말한다: "당겨야 한다. 5 > 1이다." 칸트의 의무론자는 묻는다: "레버를 당기는 것이 보편화 가능한가? 그 1인을 5인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인가?" 덕윤리자는 묻는다: "이 상황에서 용기 있고 정의로운 사람은 어떻게 행동할까?" 같은 상황, 세 개의 다른 프레임.
IV. 응용윤리: 현실의 전장(戰場)
이론만으로는 부족하다. 좋은 윤리학은 실제 문제에 답해야 한다.
생명윤리 (Bioethics)
생명윤리는 의학과 생명과학이 제기하는 도덕적 문제들을 다룬다. 안락사(euthanasia) 를 보자. 말기 암 환자가 더 이상 살기를 원치 않을 때 의사는 죽음을 도와야 하는가? 공리주의자는 고통의 최소화 관점에서 허용을 지지할 수 있다. 의무론자는 생명의 불가침성과 의사의 "해를 끼치지 말라"는 의무를 근거로 반대할 수 있다. 덕윤리자는 의사라는 직업에 요구되는 덕(연민, 신중함, 정직)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물을 것이다. 또한 4단계에서 배운 미끄러운 경사면 오류가 이 논쟁에서 자주 등장한다 — "안락사를 허용하면 결국 원치 않는 사람도 죽이게 된다"는 주장이 오류인지 아닌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AI 윤리 (AI Ethics)
이 분야는 현재 가장 뜨거운 응용윤리 영역이다. 자율주행차 의 딜레마를 생각해보자: 브레이크가 고장났다. 직진하면 노인 5명, 방향을 바꾸면 어린이 1명이 사망한다. 알고리즘에 무엇을 프로그래밍해야 하는가? 트롤리 문제의 현실 버전인데, 여기에는 추가 차원이 있다 —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행위 자체가 결과를 미리 결정하는 것이므로, 의사결정 주체가 운전자에서 제조사로 이동한다. 알고리즘적 편향(algorithmic bias) 도 심각한 문제다. AI가 채용, 대출, 보석금 결정에서 특정 인종이나 성별에 불리한 결과를 낼 때, 이것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라 하더라도 도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피터 싱어의 선호 공리주의가 AI 권리 논쟁에서 어떤 함의를 갖는지도 흥미롭게 생각해볼 지점이다.
환경윤리 (Environmental Ethics)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 는 자연에 도구적 가치만 있다고 본다 — 자연은 인간을 위한 자원이다. 반면 생물중심주의(biocentrism) 는 모든 생명체가 그 자체로 내재적 가치를 가진다고 본다. 심층 생태학(deep ecology) 은 더 나아가 생태계 전체가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대 간 정의(intergenerational justice) 다 — 지금 살아있는 우리의 행위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에게 기후 변화라는 부담을 전가한다면, 롤스의 정의론(아래에서 다룬다)은 이 문제에 어떤 답을 줄 수 있는가?
V. 정치철학: 정의로운 사회의 청사진
윤리학이 개인의 행동을 다룬다면, 정치철학(political philosophy) 은 사회의 구조를 다룬다. "어떤 사회가 정의로운가?" — 20세기의 두 거인이 정면으로 대립했다.
롤스의 정의론 (Rawls' Theory of Justice)
존 롤스(John Rawls)는 1971년 A Theory of Justice를 출판해 정치철학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그의 핵심 사고 실험: "만약 우리가 자신이 사회의 어떤 위치에 태어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사회의 기본 구조를 설계한다면, 어떤 원칙을 선택하겠는가?"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롤스는 두 장치를 제시한다. 원초적 입장(original position) 은 사회 계약의 가상적 출발점으로, 모든 사람이 공정한 조건에서 사회 원칙을 협상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 이라는 장치가 추가된다: 각자는 자신의 사회적 계급, 재산, 지능, 성별, 인종은 물론 어떤 가치관을 가질지조차 모른다. 이 무지의 베일이 협상을 공정하게 만든다 — 부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규칙을 주장하거나, 재능 있는 사람이 재능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원천 차단된다.
이 상황에서 이성적인 인간은 어떤 원칙을 선택할까? 롤스는 두 가지 정의 원칙이 도출된다고 주장한다. 제1원칙(자유 원칙): 모든 사람은 가장 광범위한 기본적 자유(언론, 양심, 집회 등)를 가져야 하며, 이 자유는 다른 모든 사람의 동일한 자유와 양립 가능해야 한다. 제2원칙(차등 원칙):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은 두 조건을 만족할 때만 정당화된다 — ⓐ 불평등이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이득이 되도록(difference principle), ⓑ 공정한 기회균등 조건 하에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직책과 결부될 때.
[노트 기록] 롤스의 두 정의 원칙: ① 기본적 자유의 평등 (최우선) / ② 차등 원칙: 불평등은 최하층에게 이득이 될 때만 허용 + 공정한 기회균등.
특히 차등 원칙이 핵심이다. 롤스는 최하층을 최대화하는 전략(maximin: maximize the minimum)을 지지한다. 왜? 무지의 베일 아래서 각자는 자신이 최하층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이성적으로 최하층의 삶을 최대한 개선하는 원칙을 선택할 것이라는 논리다. 이것이 공리주의와 다른 점에 주목하자 — 공리주의는 총합의 극대화를 추구하지만, 롤스는 최소수혜자의 상황 개선을 우선시한다.
노직의 자유지상주의 (Nozick's Libertarianism)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은 1974년 Anarchy, State, and Utopia로 롤스에 직접 반론을 제기했다. 그의 출발점: "개인은 침해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진다." 이 권리는 너무 강해서 다른 사람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도 침해될 수 없다.
노직의 권원 이론(entitlement theory) 은 세 원칙으로 구성된다. 취득의 정의: 정당하게 취득한 재산에 대한 소유권. 이전의 정의: 자유로운 교환을 통해 이전된 재산의 소유권. 교정의 정의: 과거의 부당한 취득이나 이전을 교정하는 원칙. 핵심은 이것이다: 분배 상태가 정의로운지는 그 결과 패턴이 아니라 과정이 정의로웠는지에 달려있다.
유명한 윌트 체임벌린 논증(Wilt Chamberlain argument): 가상의 농구선수 체임벌린이 경기마다 25센트씩 팬들로부터 자발적으로 기부받는다고 하자. 100만 팬이 기부하면 체임벌린은 25만 달러를 번다. 이 불평등은 정의로운가? 노직은 "그렇다"고 한다 — 각 교환이 자발적이었으므로. 롤스의 재분배(세금)를 실현하기 위해 이 과정에 강제로 개입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노직은 아이러니하게도 칸트의 인격성 공식을 롤스에 대해 사용한다 — 강제 세금은 사람을 국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이라고.
[노트 기록] 롤스 vs 노직: 롤스 = 결과의 공정성(최하층 우선) / 노직 = 과정의 공정성(자발적 교환이면 정의) / 핵심 대립: 분배적 정의 vs 자유로운 교환권.
이 대립은 학문적 논쟁에 그치지 않는다. 복지 국가, 최저임금, 부유세, 공공 의료보험의 정당성 — 이 모든 현실 정치의 쟁점이 롤스와 노직 사이의 긴장에서 나온다. 메타윤리학이 "도덕이란 무엇인가?"를 물었고, 규범윤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세 방향에서 답했으며, 응용윤리가 그 답을 현실에 적용하고, 정치철학이 그 원칙을 사회 구조로 확장했다 — 이 모든 층위는 상호 연결돼 있다. 롤스의 차등 원칙 이면에는 공리주의적 직관도 있고 칸트적 자유 원칙도 있으며, 노직의 자유지상주의 이면에는 칸트의 인격 존중이 있다.
VI. 프로젝트: 철학으로 현실을 해부하라
이제 배운 것을 직접 손으로 써보며 적용할 시간이다. 정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논증을 구성하는 것이 목표다. 각 문제를 최소 10-15분씩 진지하게 씨름하자.
프로젝트 1: 트롤리 문제의 변주들 — 딜레마 분석 (약 20분)
기본 세팅: 트롤리가 5명을 향해 달려온다. 레버를 당기면 1명이 있는 다른 선로로 방향이 바뀐다.
변주 1 — 뚱뚱한 남자(Fat Man): 레버가 없다. 육교 위에 매우 몸집이 큰 사람이 있다. 그를 밀어 트롤리를 멈추면 그는 죽지만 5명이 산다. 밀어야 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레버는 당기지만 밀기는 거부한다. 두 상황의 수학적 구조는 동일한데(1 vs 5), 왜 이 직관적 차이가 발생하는가? 이 차이를 공리주의, 의무론, 덕윤리 각각의 언어로 설명하고, 세 이론 중 어느 것이 이 직관을 가장 잘 포착하는지 논증하라.
변주 2 — 자율주행차: 자율주행차의 브레이크가 완전히 고장났다. 직진하면 무단횡단 중인 어르신 1명, 방향 전환하면 신호를 지키던 어린이 1명이 사망한다. 이 차량을 제조한 기업은 어떤 알고리즘을 프로그래밍해야 하는가? 공리주의, 의무론, 덕윤리 각각의 관점에서 분석하라. 그리고 이 질문에서 개인 윤리가 아니라 기업의 정책 결정이라는 점이 윤리적 분석에 어떤 차원을 추가하는지 서술하라.
변주 3 — 장기 은행(Organ Bank): 한 의사가 건강한 여행자를 수술하면 다섯 명의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여행자는 이 사실을 모른다. 공리주의는 이것을 어떻게 정당화하는가? 우리의 강렬한 도덕적 거부감이 어디서 오는지 설명하고, 이 거부감이 공리주의의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드러내는지 논증하라. 이 직관을 더 잘 설명하는 이론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변주 4 — 환경 트롤리: 화학 공장 폐수 처리 시스템이 고장났다. A 방향으로 방류하면 희귀 습지가 영구 파괴되고(생태계 복원 불가), B 방향으로 방류하면 인근 도시의 수돗물이 1개월간 오염된다(해결 가능). 환경윤리의 인간중심주의와 생물중심주의 각각의 입장에서 이 결정을 분석하라. 추가로, 롤스의 차등 원칙을 미래 세대에까지 확장한다면 어떤 답이 나오는가?
프로젝트 2: AI 윤리 가이드라인 초안 작성 (약 30분)
너는 한 AI 기업의 윤리 위원회 자문위원이다. 기업은 다음 세 AI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A) 채용 AI: 수천 명의 이력서를 분석해 최종 후보자 50명을 선발하는 AI. 학습 데이터에 과거 채용 패턴이 포함돼 있어 특정 성별이나 출신 학교에 편향된 결과를 낼 가능성이 있다. (B) 의료 진단 AI: 암을 조기 발견하는 AI지만, 특정 희귀 암 유형에서는 오진율이 인간 의사보다 높은 경우가 있다. (C) 감정 인식 AI: 학생의 수업 집중도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교사에게 알려주는 교실 모니터링 AI.
이 세 시스템에 적용될 10개 조항의 윤리 강령(code of ethics) 을 작성하라. 조건은 다음과 같다:
- 각 조항 뒤에 어떤 윤리 이론(공리주의 / 의무론 / 덕윤리)에 근거했는지 괄호로 명시할 것.
- 세 이론이 각각 최소 2조항 이상 근거 이론으로 사용될 것.
- 조항들 중 최소 2개는 서로 긴장 관계(tension) 에 있을 것 — 두 조항이 동시에 완전히 충족되기 어려운 상황을 구체적으로 예시하고, 이 긴장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짧게 논의할 것.
- 강령 말미에, 이 가이드라인을 롤스의 관점과 노직의 관점 에서 각각 평가하는 문단을 하나씩 작성할 것. 롤스라면 무엇을 환영하고 무엇을 부족하다고 할까? 노직이라면 어떤 조항에 반대할까?
프로젝트 3: 철학적 입장 방어 에세이 (선택)
다음 중 하나를 골라 에세이를 써라.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논증하는 형태여야 하며, 예상 반론을 제시하고 그것에 답해야 한다.
주제 ①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개인의 자유(육식, 항공 여행, 소비)를 법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정당한가?" — 롤스와 노직의 프레임으로 분석하고, 어느 입장이 더 설득력 있는지 논증하라. 환경윤리의 세대 간 정의 개념을 반드시 포함하라.
주제 ② "인공지능이 인간과 구별 불가능한 수준으로 고통과 선호를 가질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도덕적 권리를 가지는가?" — 피터 싱어의 선호 공리주의, 칸트의 인격성 공식, 그리고 메타윤리적 함의(도덕 실재론이 옳다면? 표현주의가 옳다면?)를 각각 다뤄라.
주제 ③ "소득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누진세는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 롤스의 차등 원칙과 노직의 권원 이론을 정면으로 부딪히게 하고, 어느 쪽이 더 설득력 있는지 자신의 논증을 구성하라.
에세이 조건: 1,000자 이상 / 최소 2명의 철학자 주장을 정확하게 인용 / 최소 1개의 예상 반론과 재반론 포함 / 자신의 논증이 공리주의·의무론·덕윤리 중 어느 전통에 가장 가까운지 명시.
이 프로젝트들을 하면서 이론과 직관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것이 바로 올바른 신호다. 윤리학은 편안한 답을 주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 우리가 이미 가진 직관을 정확한 언어로 해부하고, 그것이 일관성이 있는지 검토하며, 더 나은 논증으로 나아가기 위해 존재한다. 트롤리 문제에 단 하나의 정답이 없듯, 세계의 도덕 문제에도 자동으로 답이 나오는 공식은 없다 — 그래서 3,000년이 지나도 철학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