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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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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단계: 논리의 언어, 과학의 문법

배경지식: "왜 논리를 기호로 쓰는가?"

1단계에서 우리는 논증의 기본 구조, 전제(Premise)와 결론(Conclusion), 그리고 연역과 귀납의 차이를 배웠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고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는 타당한(valid) 논증이라고 했다. 그런데 잠깐—무엇이 이 논증을 '타당하게' 만드는가? 그리고 타당함(Validity)과 참(Truth)은 같은 개념인가? 이 질문이 바로 형식논리학의 출발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384–322 BCE)는 저서 『오르가논(Organon)』에서 **삼단논법(Syllogism)**을 체계화하며 논리학을 처음 학문의 형태로 정립했다. 그가 발견한 핵심 통찰은 이것이다: 논증의 내용(content)이 아닌 형식(form)만으로 타당성을 판단할 수 있다. "모든 A는 B다, x는 A다, 따라서 x는 B다"라는 구조가 타당한 이유는, A·B·x에 어떤 내용을 집어넣어도—아무리 황당한 내용이더라도—결론이 반드시 따라오기 때문이다. "모든 고양이는 음악가다, 나폴레옹은 고양이다, 따라서 나폴레옹은 음악가다"는 내용은 말도 안 되지만 형식은 타당하다. 이것이 타당성과 참의 차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은 19세기에 들어 한계를 드러냈다. 수학의 발전과 함께 "모든 짝수는 어떤 수의 두 배다"처럼 술어와 양화사가 포함된 복잡한 명제들을 기존 삼단논법으로는 다루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를 돌파한 사람이 고트로브 프레게(Gottlob Frege, 1848–1925)다. 그는 1879년 『개념표기법(Begriffsschrift)』을 출판하며 현대 기호 논리학의 기초를 놓았다. 마치 화학자가 물(H₂O)을 수소 2개와 산소 1개로 분해하듯, 프레게는 명제를 수학적 기호로 분해하여 논증의 뼈대만 남기는 방법을 만들었다.

[노트 기록]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 → 논증의 "형식"이 타당성을 결정. 프레게의 현대 기호논리학(1879) → 수학적 정밀도로 논증 분석. 핵심 구분: 타당성(Validity) = 형식의 문제 / 참(Truth) = 내용의 문제


형식논리학: 세계를 기호로 번역하기

명제논리(Propositional Logic)의 기초

**명제(Proposition)**란 참이거나 거짓일 수 있는 문장이다. "서울은 한국의 수도다"는 명제지만, "서울에 가라!"나 "서울은 아름다운가?"는 명제가 아니다. 명제논리에서는 명제들을 알파벳 소문자 **p, q, r…**로 표현하고, 이들을 **논리 연결사(Logical Connective)**로 연결한다. 다섯 가지 핵심 연결사를 이해하는 것이 명제논리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정(Negation, ¬)**은 명제의 진리값을 반전시킨다. p가 참이면 ¬p는 거짓이다. **연언(Conjunction, ∧)**은 AND에 해당하며, p∧q는 p도 참이고 q도 참일 때만 참이다. **선언(Disjunction, ∨)**은 OR이며, p∨q는 적어도 하나가 참이면 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면서도 직관적으로 헷갈리는 것이 **조건문(Conditional, →)**이다. "p이면 q다(p→q)"는 p가 참인데 q가 거짓인 경우에만 거짓이 된다. 마지막으로 **쌍조건문(Biconditional, ↔)**은 p와 q의 진리값이 같을 때만 참이다.

[노트 기록] 5대 논리 연결사와 기호: ¬p: NOT p (부정) / p∧q: p AND q, 둘 다 참일 때만 참 / p∨q: p OR q, 하나라도 참이면 참 / p→q: p이면 q, p참-q거짓일 때만 거짓 / p↔q: 진리값 같을 때만 참

여기서 조건문(p→q)이 왜 그런 진리값을 갖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자. "비가 오면 땅이 젖는다"에서 네 가지 경우가 가능하다. (1) 비가 오고 땅이 젖었다. (2) 비가 오는데 땅이 안 젖었다. (3) 비가 안 왔는데 땅이 젖었다. (4) 비도 안 왔고 땅도 안 젖었다. 직관적으로 (2)의 경우만 조건문이 거짓이어야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3)과 (4)의 경우는 어떤가? 스프링클러가 있거나, 비도 안 오고 땅도 안 젖었다면—그 조건문을 "거짓이다"고 할 수 있는가? 이것이 논리학자들이 **물질적 조건문(Material Conditional)**을 정의하며 고민했던 질문이다. 왜 (3)과 (4)가 참으로 약속됐는지 직접 생각해 보는 것이 논리학적 사고의 시작이다.

진리표(Truth Table): 논증 타당성의 검증 기계

**진리표(Truth Table)**는 명제들의 모든 가능한 진리값 조합에 대해 복합 명제의 진리값을 표로 나타낸 것이다. 명제가 n개 있으면 2ⁿ개의 행이 필요하다. p 하나면 2행, p와 q 두 개면 4행, p·q·r 세 개면 8행이다. p→q의 진리표를 보면 다음과 같다.

p q p → q
T T T
T F F
F T T
F F T

논증이 타당하다는 것은, 전제가 모두 참인 경우에 결론이 반드시 참이 된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전제는 모두 참인데 결론은 거짓인 경우"—즉 반례(Counterexample)—가 존재하지 않는 논증이 타당한 논증이다. 진리표를 이용한 타당성 검증은 이 반례 탐색이다. 전제가 모두 T인 행에서 결론이 F인 행이 단 하나라도 있으면 부당(Invalid), 하나도 없으면 타당(Valid)이다.

예를 들어 논증 "p→q이고 p이다, 따라서 q다"를 검증해 보자. p=T이고 p→q=T인 경우는 위 표에서 첫 번째 행(p=T, q=T)뿐이다. 그 행에서 q=T다. 반례가 없으므로 이 논증은 타당하다. 이 형식을 논리학에서 **전건긍정(Modus Ponens, MP)**이라 한다. 반면 "p→q이고 q이다, 따라서 p다"—이것은 진리표에서 p=F, q=T인 세 번째 행에서 전제(p→q=T, q=T)는 모두 참이지만 결론(p)이 F이므로 반례가 존재한다. 부당한 논증이다. 이것이 곧 **후건긍정의 오류(Affirming the Consequent)**다. "비가 오면 땅이 젖는다. 땅이 젖었다. 따라서 비가 왔다"—스프링클러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노트 기록] 논증 타당성 검증 절차: ① 명제들을 p, q, r로 대응 → ② 진리표 작성(2ⁿ행) → ③ 전제가 모두 T인 행 선별 → ④ 그 행에서 결론이 F인 반례 탐색 → ⑤ 반례 없음: 타당(Valid), 반례 있음: 부당(Invalid)

술어논리(Predicate Logic)로의 확장

명제논리는 강력하지만 한계가 있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에서, 명제논리는 그냥 p, q, r 세 개의 독립적 명제로 취급할 뿐 이들 사이의 내부 구조—'모든', '어떤'이라는 관계—를 포착하지 못한다. **술어논리(Predicate Logic)**는 이 문제를 해결한다. 명제를 **술어(Predicate) F(x)**와 변항(Variable) x, 그리고 두 가지 **양화사(Quantifier)**로 분해한다.

**전칭 양화사(Universal Quantifier, ∀)**는 "모든 x에 대해"를 의미하며 ∀x로 쓴다. **존재 양화사(Existential Quantifier, ∃)**는 "어떤 x가 존재하여"를 의미하며 ∃x로 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x(Human(x) → Mortal(x))로, "어떤 철학자는 행복하다"는 ∃x(Philosopher(x) ∧ Happy(x))로 표현된다. 이 표기법이 왜 중요한가? 왜냐하면 전칭 명제(∀x F(x))를 반증하려면 단 하나의 반례 ¬F(a)만 있으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모든 백조는 희다"는 흰 백조를 1억 마리 봐도 증명되지 않지만, 검은 백조 한 마리로 반증된다. 이 논리가 곧 포퍼의 반증주의로 연결된다—잠시 후에 보자.


언어철학: 말이 세계를 만든다

비트겐슈타인의 두 얼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은 철학사에서 극히 드문 인물이다. 자기 자신의 이전 철학을 스스로 뒤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사상은 전기와 후기로 나뉘며, 이 두 시기는 언어철학의 두 가지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을 대표한다.

전기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1921)』에서 언어와 세계의 관계를 **그림 이론(Picture Theory of Meaning)**으로 설명했다. 언어는 세계의 논리적 그림이다. 의미 있는 명제는 세계의 사실을 그려내고(picture),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verifiable)해야 한다. 검증 불가능한 명제—"신은 존재한다", "삶의 의미는 사랑이다"—는 아무런 인지적 의미를 갖지 못한다. 책의 마지막 문장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Whereof one cannot speak, thereof one must be silent)"는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단 한 줄로 압축한다. 이 입장은 논리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 운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고, 곧 나올 포퍼의 과학철학과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그러나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전기의 자신을 부정했다. 그는 『철학적 탐구(Philosophical Investigations, 1953, 사후 출판)』에서 언어게임(Language-game, Sprachspiel) 개념을 도입한다. 언어는 세계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형식(Form of Life) 안에서 수행되는 활동이다. 체스에 규칙이 있듯이, 각각의 언어 사용 맥락—명령하기, 기도하기, 농담하기, 과학적 서술하기—은 그 자체의 규칙을 가진 하나의 '언어게임'이다. 단어의 의미는 세계를 반영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용(Use)에 있다. "의미는 사용이다(Meaning is use)"—이것이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핵심 테제다.

이것이 왜 혁명적인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자. 법원 서류에 쓰인 "가족 사랑", 연인 사이의 사랑, 철학 논문에서의 사랑, 팝송 가사 속의 사랑—이들은 모두 같은 의미인가? 후기 비트겐슈타인이라면 "이들은 서로 다른 언어게임 속에 있고, 각 게임의 규칙에 따라 각각 다른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게임들 사이의 유사성은 가족 내 닮음처럼 **가족 유사성(Family Resemblance)**일 뿐, 모든 게임을 하나로 묶는 본질 같은 것은 없다"고 할 것이다. 이는 3단계에서 배운 노자의 "이름 붙일 수 있는 道는 영원한 道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와 묘하게 공명하지 않는가?

[노트 기록] 비트겐슈타인 전기 vs 후기: 전기(Tractatus, 1921): 그림 이론 → 언어 = 세계의 논리적 그림, 검증 가능한 것만 의미 있음 후기(Philosophical Investigations, 1953): 언어게임 → 언어는 삶의 형식 안에서의 활동, "의미는 사용이다"

화행이론(Speech Act Theory): 말은 '행위'다

J.L. 오스틴(J.L. Austin, 1911–1960)은 언어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봤다. 그는 『말과 행위(How to Do Things with Words, 1962)』에서 언어가 단순히 세계를 기술(describe)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행위(Act)**한다는 것을 보였다. "나는 당신과 결혼하겠다고 약속합니다"라는 문장은 세계에 대한 기술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사회적 약속을 창출하는 행위다. 오스틴은 이런 언어 행위를 **수행 발화(Performative Utterance)**라고 불렀다. 비트겐슈타인이 언어를 '게임'에 비유했다면, 오스틴은 언어를 '행위(act)'로 분석한 것이다.

오스틴의 제자 존 설(John Searle, 1932–)은 이를 발전시켜 모든 발화가 세 가지 층위를 갖는다고 분석했다. **발화 행위(Locutionary Act)**는 말 그대로 어떤 소리/문장을 발화하는 행위 자체다. **발화 수반 행위(Illocutionary Act)**는 그 발화로 수행되는 사회적 행위—요청, 약속, 경고, 선언 등이다. **발화 효과 행위(Perlocutionary Act)**는 그 발화가 청자에게 미치는 실제 효과다. "창문 좀 닫아줄 수 있어?"라는 문장은 발화 행위로는 질문의 형식이지만, 발화 수반 행위로는 요청이며, 발화 효과 행위는 상대방이 실제로 창문을 닫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 세 층위를 동시에 운용하면서 대화한다.

[노트 기록] 화행이론(오스틴·설) 3층위: 발화 행위(Locutionary): 소리/문장을 발화하는 행위 자체 발화 수반 행위(Illocutionary): 발화로 수행되는 사회적 행위 (요청/약속/경고/선언) 발화 효과 행위(Perlocutionary): 발화가 청자에게 미치는 실제 효과

화행이론은 현대 언어학, AI 대화 시스템, 법철학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법정에서 "유죄"를 선고하는 판사의 말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피고의 법적 지위를 변화시키는 수행 발화다. 오늘날 인공지능 챗봇이 사용자의 의도(Intent)를 파악하려는 것도 발화 수반 행위를 이해하려는 시도다. 전기 비트겐슈타인이 "검증 불가능한 말은 의미 없다"고 했지만, 오스틴과 설은 "말은 단순히 사실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고 변화시키는 도구"라고 응답했다.


과학철학: 과학은 어떻게 진리에 다가가는가

귀납의 문제: 과학의 아킬레스건

1단계에서 우리는 귀납(Induction)이 전제가 참이어도 결론이 거짓일 수 있는 논증 형식이라는 것을 배웠다. "지금까지 100만 번의 일출이 있었다. 내일도 일출이 있을 것이다"—이것이 귀납이다. 그런데 과학은 귀납에 기반한다. 수많은 실험과 관찰 데이터를 모아 이론을 수립하는 것이 과학적 방법론의 핵심 아닌가? 그렇다면 과학의 결론은 논리적으로 필연적이지 않다는 말인가?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은 이 문제를 **귀납의 문제(Problem of Induction)**로 처음 명확하게 제기했다. 과거의 경험이 미래에도 반복될 것이라는 기대는 논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1697년 유럽인들이 호주에서 흑조(Black Swan)를 발견했을 때, "모든 백조는 희다"는 수천 년간의 귀납적 결론은 단 한 순간에 무너졌다. 귀납에 기반한 과학이 진리를 확립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20세기의 두 가지 위대한 답변이 포퍼와 쿤이다.

포퍼의 반증주의(Falsificationism)

칼 포퍼(Karl Popper, 1902–1994)는 『과학적 발견의 논리(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 1934)』에서 과학과 비과학을 나누는 **경계 문제(Demarcation Problem)**를 다루면서 혁명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과학의 특징은 '증명 가능성(verifiability)'이 아니라 **반증 가능성(Falsifiability)**이라는 것이다.

앞서 배운 술어논리로 생각해 보자. "모든 까마귀는 검다(∀x(Raven(x) → Black(x)))"를 증명하려면 우주의 모든 까마귀를 검사해야 한다—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명제를 반증하려면 흰 까마귀 단 하나(∃a(Raven(a) ∧ ¬Black(a)))만 찾으면 된다. 전칭 명제는 결코 완전히 증명될 수 없지만, 단 하나의 반례로 반증될 수 있다. 포퍼에 따르면, 진정한 과학적 이론은 반증 가능해야 한다. 어떤 주장이 어떤 경험적 증거에 의해서도 반증될 수 없다면, 그것은 과학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수성의 근일점 이동(Perihelion Precession), 빛의 중력 굴절, 중력파 등 구체적으로 반증 가능한 예측을 내놓았기 때문에 과학이다. 1919년 에딩턴의 일식 관측은 아인슈타인의 예측을 확인했지만, 포퍼에게 더 중요한 것은 "만약 빛이 굴절되지 않았다면 이론이 틀린 것이 된다"는 반증 가능성 자체였다. 반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어떤 환자의 반응도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반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포퍼에게는 과학이 아니다. 과학은 틀릴 수 있기 때문에 가치 있다는 역설이 반증주의의 핵심이다.

[노트 기록] 포퍼 반증주의 핵심: 과학의 기준 = 반증 가능성(Falsifiability), 검증 가능성이 아님 ∀x F(x)는 단 하나의 반례 ¬F(a)로 반증 가능 (술어논리와 연결!) 반증 불가능한 이론 → 의사과학(Pseudoscience): 점성술, 미검증 정신분석 등 과학적 태도: 이론을 반증하려 시도하고, 반증에 성공하면 이론 수정/폐기

쿤의 패러다임 이론(Paradigm Theory)

포퍼가 과학의 '논리'를 분석했다면, 토마스 쿤(Thomas Kuhn, 1922–1996)은 과학의 '역사'를 분석했다. 그는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1962)』에서 과학이 포퍼가 묘사한 것처럼 끊임없이 이론을 반증하며 진보하는 것이 아님을 역사적 사례를 통해 보였다.

쿤의 핵심 개념은 **패러다임(Paradigm)**이다. 패러다임이란 특정 시기의 과학 공동체가 공유하는 세계관, 방법론, 가치, 표준 예제들의 총체다. 과학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패러다임 내에서 퍼즐 풀기(Puzzle-solving)—즉 정상 과학(Normal Science)—에 보낸다. 뉴턴 역학이 패러다임을 지배하던 시기에, 수성의 공전 궤도 이탈 같은 '이상 현상(Anomaly)'이 발견되어도 과학자들은 이것을 패러다임의 반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딘가 관측 오류나 다른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패러다임 내에서 해결하려 했다. 포퍼가 "반증을 발견하면 이론을 버려라"고 했지만, 실제 과학자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상 현상이 누적되어 더 이상 기존 패러다임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이 일어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이 일어난다. 천동설→지동설(코페르니쿠스), 뉴턴 역학→상대성이론(아인슈타인), 전통 분류학→진화론(다윈)이 그 예다. 쿤은 두 패러다임이 서로 **공약 불가능(Incommensurable)**하다고 주장했다. 뉴턴 역학의 '질량'과 상대성이론의 '질량'은 같은 단어를 쓰지만 실은 다른 개념이다. 이것은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 개념과 연결된다—두 패러다임은 서로 다른 언어게임을 하고 있어서 단순 비교가 불가능하다.

[노트 기록] 쿤의 과학발전 모델: 정상 과학(Normal Science) → 이상 현상 누적(Anomaly) → 위기(Crisis) →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 → 새 패러다임 → 정상 과학 반복 핵심 개념: 패러다임(Paradigm), 공약 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

포퍼 vs 쿤을 한 문장으로 대립시켜 보면: 포퍼에게 과학자는 자신의 이론을 반증하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비판적 합리주의자여야 하지만, 쿤에게 과학자는 대부분의 시간을 현재 패러다임 안에서 정상 과학을 수행하며, 패러다임 전환은 합리적 논증보다 심리적·사회적 변환(Gestalt Switch)에 가깝다. 두 관점 중 당신은 어떤 설명이 실제 과학의 역사에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가? 이것 자체가 과학철학의 현재진행형 논쟁이다.


논리적 오류 15종: 일상 속에 숨은 함정들

1단계에서 논증의 구조를 배웠다면, 이제는 논증이 어떻게 잘못될 수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차례다. **논리적 오류(Logical Fallacy)**는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결함 있는 추론이다. **형식적 오류(Formal Fallacy)**는 논증의 형식 자체가 부당한 경우이고, **비형식적 오류(Informal Fallacy)**는 논증의 내용이나 맥락에서 발생하는 오류다. 형식적 오류는 진리표로 직접 반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서 배운 논리학과 직결된다.

형식적 오류 2종. 먼저 **전건 부정의 오류(Denying the Antecedent)**는 "p→q이고 ¬p이면 ¬q"라고 추론하는 오류다. "비가 오면 땅이 젖는다. 비가 안 왔다. 따라서 땅이 안 젖었다"—진리표에서 p=F, q=T인 경우 p→q=T이고 ¬p=T이지만 ¬q=F인 반례가 존재한다. 다음으로 앞서 설명한 **후건 긍정의 오류(Affirming the Consequent)**는 "p→q이고 q이면 p"라고 추론하는 오류다. 이 두 오류는 진리표로 정확히 반박 가능하다는 점에서 형식논리학과 직결된다.

비형식적 오류 13종. **인신공격 오류(Ad Hominem)**는 주장의 내용이 아닌 주장자의 인격이나 동기를 공격한다. "그 사람은 과거에 거짓말을 했으니 그의 주장은 틀렸다"—설령 그가 나쁜 사람이더라도 주장은 별도로 검토해야 한다. **허수아비 공격 오류(Straw Man)**는 상대방의 주장을 약화되거나 왜곡된 형태로 바꿔 놓고 그것을 공격한다. "과학 교육에 예술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은 사람이 "과학이 필요 없다는 말이냐?"로 응답하는 것이 전형이다.

**권위에 호소(Appeal to Authority, Ad Verecundiam)**는 해당 분야 전문가가 아닌 사람의 권위를 들어 주장을 지지하거나, 권위자의 말이라 해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스포츠 스타가 의학 제품을 광고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대중에 호소(Bandwagon, Ad Populum)**는 "많은 사람이 그렇게 믿으므로 참이다"는 주장이다. **감정에 호소(Appeal to Emotion)**는 논리적 근거 대신 공포, 연민, 자부심 등을 이용한다. **무지에 호소(Appeal to Ignorance, Ad Ignorantiam)**는 "증명되지 않았으니 거짓이다, 혹은 반증되지 않았으니 참이다"는 주장이다. "귀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잖아. 따라서 귀신은 존재한다"—이것은 포퍼의 반증주의 기준에서도 문제가 있다. 반증 불가능한 명제를 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급한 일반화(Hasty Generalization)**는 충분하지 않은 표본으로 전체를 일반화한다. 앞서 배운 흄의 귀납 문제와도 연결된다. **거짓 원인의 오류(Post Hoc Ergo Propter Hoc, 후후고)**는 시간적 선후 관계를 인과 관계로 착각한다. "내가 새 운동화를 신은 날 팀이 이겼다. 이 운동화 덕분이다." **합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는 부분의 속성이 전체에도 적용된다고 착각한다. "이 팀의 선수들은 각자 최고다. 따라서 이 팀은 최고다"—팀워크가 없을 수 있다. **분해의 오류(Fallacy of Division)**는 반대로 전체의 속성이 각 부분에도 적용된다고 착각한다.

**순환 논증(Circular Reasoning, Petitio Principii)**은 결론이 전제 안에 이미 숨어 있다. "성경은 참이다. 왜냐하면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기 때문이다"—전제와 결론이 동일하다. **거짓 이분법(False Dilemma)**은 실제로는 더 많은 선택지가 있는데 두 가지만 있는 것처럼 제시한다. "너는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다." **미끄러운 경사면 오류(Slippery Slope)**는 A가 일어나면 자동으로 B, C, D…가 연쇄적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충분한 근거 없이 주장한다. "한 번 게임을 허락하면, 결국 학교도 안 가고 폐인이 될 것이다."

[노트 기록] 논리적 오류 15종 분류표: 형식적 오류: ①전건 부정 ②후건 긍정 관련성 오류: ③인신공격 ④허수아비 ⑤권위에 호소 ⑥대중에 호소 ⑦감정에 호소 ⑧무지에 호소 증거 오류: ⑨성급한 일반화 ⑩거짓 원인(후후고) ⑪합성의 오류 ⑫분해의 오류 전제 오류: ⑬순환 논증 ⑭거짓 이분법 ⑮미끄러운 경사면


프로젝트: 논리의 실전

아래 문제들은 단순히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다. 각 문제에서 자신의 추론 과정을 명시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핵심이다. 근거 없는 주장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총 소요 시간 약 40분.


파트 A — 진리표와 논증 타당성 (35점)

문제 1 (10점) 다음 세 복합 명제의 진리표를 완성하라. p와 q 각각 T/F의 조합 4개 행을 모두 작성해야 한다.

(a) ¬p ∨ q
(b) p ∧ ¬q
(c) (p → q) ↔ (¬q → ¬p)

(c)를 완성한 뒤, 이 명제의 모든 행의 진리값에서 어떤 패턴이 발견되는가? 이 명제를 논리학에서 무엇이라 부르는지 추론해 보라. 그리고 (a)와 (c)를 비교했을 때 어떤 관계가 있는지 서술하라.

문제 2 (15점) 다음 두 논증이 각각 타당한지(Valid) 부당한지(Invalid)를 진리표를 이용해 검증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라.

논증 A:
  전제1: p → q
  전제2: ¬q
  결론:  ¬p

논증 B:
  전제1: p → q
  전제2: q → r
  결론:  p → r

각 논증에서 전제가 모두 T인 행이 몇 개인지, 그 행에서 결론의 진리값이 어떤지 명시하라. 논증 A의 형식 이름을 추론해 보라.

문제 3 (10점) 다음 일상 논증을 기호 논리식으로 번역하라. 어떤 명제가 p, q, r에 해당하는지 먼저 명시하고, 그 다음 전제와 결론의 논리식을 쓰라.

(a)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 성적을 받는다.
     나는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다.
     따라서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b) "오늘 피자를 먹거나 파스타를 먹는다.
     오늘 피자를 먹지 않는다.
     따라서 오늘 파스타를 먹는다."

각 논증의 형식 이름(Modus Ponens, Modus Tollens, Hypothetical Syllogism, Disjunctive Syllogism 중 하나)을 추론하라.


파트 B — 논리적 오류 분석 (45점)

문제 4 (20점) 아래 다섯 개의 주장을 읽고, 각각에서 사용된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라. 단순히 오류 이름만 쓰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① 어떤 부분이 오류인지, ② 오류가 없는 올바른 논증이라면 어떤 추가 전제가 필요한지를 서술하라.

(가) "이번 환경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지구가 망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 "제가 이 다이어트 약을 먹기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5kg이 빠졌습니다. 이 약 덕분입니다."

(다) "그 경제학자의 말을 왜 믿어? 그는 이혼도 했고 세금 탈루 의혹도 있잖아."

(라) "전 세계 과학자의 97%가 기후변화가 인간 활동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더 이상 논의하지 말아야 한다."

(마) "군대에서 선임이 하라고 하면 해야 한다. 왜냐하면 군대는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문제 5 (25점) 아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오간 대화를 재구성한 것이다. 전체 대화를 읽고, 각 화자의 발언에서 논리적 오류를 찾아라. 최소 5개의 오류를 찾아야 하며, 각 오류에 대해 ① 오류 이름, ② 해당 발언 인용, ③ 오류인 이유를 서술하라.

화자 A: "전기차는 환경에 좋지 않아.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엄청 나오거든." 화자 B: "그럼 전기차 반대한다는 거야? 지구 온난화가 더 심해져도 된다는 거야?" 화자 A: "그게 아니라 단순히 전기차가 환경 친화적이라는 주장이 과장됐다는 거지." 화자 C: "연구 결과를 보면 전기차 전 생애주기 탄소 배출량이 내연기관차보다 적어." 화자 B: "어차피 C는 전기차 회사 주식을 가지고 있잖아. 그 말 믿을 게 못 돼." 화자 D: "맞아, 요즘 젊은이들이 다 전기차가 좋다고 하니까 좋은 거 아니겠어? 시대가 바뀐 거지." 화자 A: "근데 유명 환경운동가 ○○○도 전기차에 회의적인 발언을 한 적 있어." 화자 B: "○○○는 화석연료 회사에서 후원받는다는 의혹이 있어. 신뢰할 수 없지." 화자 C: "지금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불편한 건 사실이지. 하지만 한 번이라도 충전 불편을 경험하면 결국 다들 전기차를 포기하게 될 거야."


파트 C — 과학철학 적용 (20점, 동료 평가용)

문제 6 (20점) 다음 세 가지 주장을 읽고, 포퍼의 반증주의 기준에서 각 주장이 '과학적'인지 '비과학적'인지 판별하라. 판별에 그치지 말고, 포퍼의 기준에서 '과학적이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을 명시적으로 서술한 뒤, 각 주장이 그 조건을 충족하는지 논증하라.

주장 1: "모든 물체는 두 질량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인력을 갖는다." (뉴턴 만유인력의 법칙) 주장 2: "꿈에서 나타나는 모든 상징은 무의식적 욕망의 표현이다." (프로이트식 꿈 해석) 주장 3: "죽기 직전에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추가로, 포퍼의 반증주의에 대한 쿤의 비판을 한 문단(200자 이상)으로 서술하라. 그리고 당신은 포퍼와 쿤 중 어떤 입장이 실제 과학의 역사에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논증하라.


참고 문헌 Gottlob Frege, Begriffsschrift (1879) / Ludwig Wittgenstein,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1921); Philosophical Investigations (1953) / J.L. Austin, How to Do Things with Words (1962) / John Searle, Speech Acts (1969) / Karl Popper, 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 (1934) / Thomas Kuhn,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1962) / Irving Copi & Carl Cohen, Introduction to Logic (14th ed.,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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