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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및 통계물리학

Statistical Phys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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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비평형 통계역학 · 정보 열역학 · 생물물리학


이론적 기초 — 평형이라는 환상 바깥의 세계

1단계에서 우리는 **엔트로피(S)**가 고립계에서 항상 증가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을 배웠고, 2단계에서는 볼츠만 분포 를 통해 계가 각 에너지 상태에 있을 확률을 계산하는 법을 익혔다. 자유 에너지 를 최소화하는 방향이 곧 평형(equilibrium)이라는 것도 배웠다. 그런데 여기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몸속 세포는 평형 상태인가?

대답은 단호하게 아니다. 심장은 계속 피를 펌프질하고, 미토콘드리아는 ATP를 쉴 새 없이 합성하며, 뇌의 뉴런들은 전기 신호를 주고받는다. 이 모든 과정은 에너지가 끊임없이 유입되고 소비되는 비평형(non-equilibrium) 상태다. 더 극적인 예를 들면, 태풍은 대기의 온도 차라는 비평형 조건으로부터 자발적으로 거대한 소용돌이 구조를 형성한다. 지금까지 배운 평형 통계역학은 사실 이 광대한 비평형 세계의 아주 좁은 귀퉁이만을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의 화살표(Arrow of Time)**를 떠올려보자. 2단계에서 공부한 볼츠만의 H-정리는, 미시적 운동 방정식(뉴턴 역학, 슈뢰딩거 방정식)은 시간 역전(t → −t)에 대해 대칭적임에도 불구하고, 거시적 열역학 과정은 왜 불가역적(irreversible)으로 보이는지에 대한 첫 번째 단서를 제공했다. 엔트로피는 증가하고, 열은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흐르며, 깨진 달걀은 다시 붙지 않는다. 이 비가역성(irreversibility)의 정체가 바로 이번 단계의 핵심 주제다. 비평형 통계역학은 바로 이 '왜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가'라는 질문에 수학적으로 답하는 학문이다.

[노트 기록] 핵심 용어 정리: 평형(equilibrium) = 거시적 상태량이 시간에 무관한 상태. 비평형(non-equilibrium) = 에너지·물질의 흐름이 존재하여 거시적 상태가 변하거나, 외부 구동에 의해 정상 상태(steady state)가 유지되는 상태. 비가역성(irreversibility) = 역방향 과정이 자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성질.


1부: 비평형 통계역학과 요동-소산 정리

브라운 운동 — 평형이 흔들리기 시작하다

1827년, 식물학자 로버트 브라운(Robert Brown)은 현미경으로 꽃가루를 관찰하다가 이상한 것을 목격했다. 물 위의 꽃가루 입자들이 아무런 외력 없이 제멋대로 지그재그 운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브라운 운동(Brownian motion)**이라 부르는데, 190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이 운동의 수학적 이론을 완성했다. 아인슈타인은 "Über die von der molekularkinetischen Theorie der Wärme geforderte Bewegung von in ruhenden Flüssigkeiten suspendierten Teilchen"(1905)에서 꽃가루가 물 분자들의 무수한 충돌을 받아 불규칙하게 움직인다는 것을 보였고, 이로부터 확산 계수(diffusion coefficient)를 도출했다. 이 논문은 원자·분자의 실재(reality)를 최초로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이 브라운 운동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방정식이 바로 **랑주뱅 방정식(Langevin equation)**이다. 1908년 폴 랑주뱅(Paul Langevin)이 제안한 이 방정식은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여기서 는 유체의 **점성 마찰(viscous drag)**이고, 는 주변 분자들의 불규칙한 충돌을 나타내는 **확률적 힘(stochastic force)**이다. 이 두 항이 공존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마찰이 있으면 계는 에너지를 잃어야 할 것 같은데, 동시에 열적 요동(thermal fluctuation)이 에너지를 공급한다. 그렇다면 계가 최종적으로 어떤 온도에 도달할지 생각해볼 수 있는가? 바로 여기서 **요동-소산 정리(Fluctuation-Dissipation Theorem, FDT)**가 등장한다.

요동-소산 정리 — 소음과 마찰은 하나다

요동-소산 정리는 다음과 같은 심오한 사실을 말한다: 계를 방해하는 임의의 요동(fluctuation)과, 계의 에너지를 소산(dissipation)시키는 마찰은 동일한 미시적 메커니즘으로부터 비롯된다. 랑주뱅 방정식에서 확률적 힘 의 세기는 마찰 계수 와 온도 에 의해 결정된다.

이 수식이 말하는 것을 직관적으로 이해해보자. 좌변의 은 두 다른 시간의 요동이 얼마나 서로 관련되어 있는지를 나타내는 **상관 함수(correlation function)**다. 는 다른 시간의 충돌들이 서로 완전히 독립적이라는 뜻이다(이를 **백색 잡음(white noise)**이라 한다). 우변에 가 같이 등장한다는 것은, 더 많이 마찰(소산)이 일어나는 환경일수록 더 강한 요동(노이즈)도 함께 존재한다는 뜻이다. 소음과 마찰은 동전의 양면이다.

[노트 기록] FDT의 핵심: . 이로부터 아인슈타인 관계식 가 유도된다. 여기서 는 확산 계수. 이는 열역학 평형 조건과 브라운 운동이 일관성을 가진다는 것을 보장한다.

FDT는 1951년 헤르베르트 칼렌(Herbert Callen)과 시어도어 웰튼(Theodore Welton)에 의해 양자 영역까지 확장되었으며("Irreversibility and Generalized Noise", Physical Review, 1951), 이후 **쿠보 공식(Kubo formula)**으로 발전한다. 쿠보 공식은 평형 근처의 선형 응답(linear response) 영역에서, 계의 수송 계수(전기 전도도, 점도, 열전도도 등)를 평형 상태의 요동으로부터 계산할 수 있게 해준다. 즉, 평형 상태의 미시적 요동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비평형 수송 성질을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자루진스키 등식 — 비평형과 평형의 다리

FDT는 평형 근처의 작은 요동에 대해서만 성립한다. 그렇다면 평형에서 크게 벗어난 비가역 과정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1997년, 크리스토퍼 자루진스키(Christopher Jarzynski)는 충격적인 등식을 발표했다(Physical Review Letters, 1997).

이것이 **자루진스키 등식(Jarzynski equality)**이다. 좌변의 는 비가역 과정에서 계에 해준 **일(work)**이고, 오른쪽의 자유 에너지 차이다. 꺾쇠괄호 는 같은 과정을 매우 많이 반복하여 평균을 낸다는 의미다. 왜 이것이 놀라운가? 2단계에서 배웠듯이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비가역 과정에서 , 즉 실제로 한 일은 항상 자유 에너지 변화보다 크거나 같다(등호는 가역 과정에서만 성립). 그런데 자루진스키 등식은 지수 함수로 평균을 취하면 비가역 과정의 데이터로부터 정확한 자유 에너지를 계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비평형 과정과 평형 열역학을 정확하게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노트 기록] 젠센 부등식(Jensen's inequality): 볼록 함수 에 대해 . 는 볼록 함수이므로, 자루진스키 등식으로부터 , 즉 . 이렇게 열역학 제2법칙이 자루진스키 등식으로부터 수학적으로 유도된다!

자루진스키 등식과 쌍을 이루는 것이 **크룩스 요동 정리(Crooks Fluctuation Theorem)**다. 개빈 크룩스(Gavin Crooks)는 1999년(Physical Review E, 1999) 정방향(forward) 과정과 역방향(reverse) 과정의 확률 비율이 다음과 같이 주어짐을 보였다.

는 정방향 과정에서 일 를 할 확률이고, 는 역방향 과정에서 일 를 할 확률이다. 두 곡선이 교차하는 지점이 바로 이므로, 이 교차점을 찾으면 실험적으로 자유 에너지를 결정할 수 있다. 이 기법은 현재 단백질 폴딩(protein folding)의 자유 에너지 측정에 실제로 사용되고 있다.


2부: 정보 열역학과 란다우어 한계

맥스웰의 도깨비 — 열역학 제2법칙을 깨뜨리는 존재?

1867년,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James Clerk Maxwell)은 열역학 제2법칙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사고 실험을 제안했다. 가운데 작은 문이 달린 벽으로 나뉜 용기를 상상해보자. 양쪽에 기체가 가득 들어 있고, 온도는 동일하다. 이제 그 문을 조작하는 **'도깨비(demon)'**가 있어서, 왼쪽에서 오는 빠른 분자만 오른쪽으로 통과시키고, 오른쪽에서 오는 느린 분자만 왼쪽으로 통과시킨다. 시간이 지나면 오른쪽은 뜨거워지고 왼쪽은 차가워진다. 도깨비는 일을 전혀 하지 않고 온도 차이를 만들었다. 이는 열역학 제2법칙의 위반처럼 보인다!

이 역설은 약 100년 동안 물리학자들을 괴롭혔다. 1929년 레오 실라르드(Leó Szilárd)는 더 단순한 버전을 제안했다(실라르드 엔진, Szilard Engine). 분자 하나가 들어 있는 용기에 피스톤을 삽입한다. 도깨비는 분자가 어느 쪽에 있는지 **측정(measurement)**하고, 분자가 있는 쪽을 이용해 등온 팽창으로 의 일을 추출한다. 단 하나의 비트(1 bit) 정보가 의 에너지에 해당하는 일을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정보와 에너지는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아닐까?

란다우어 한계 — 정보 지우기는 에너지를 소비한다

맥스웰의 도깨비 역설을 해결한 것은 1961년 롤프 란다우어(Rolf Landauer)였다. 그의 논문 "Irreversibility and Heat Generation in the Computing Process"(IBM Journal of Research and Development, 1961)는 정보 이론과 물리학을 연결하는 이정표가 되었다. 란다우어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논리적으로 비가역적인(logically irreversible) 연산은 반드시 에너지를 소산한다.

논리적 비가역성이란 무엇인가? 예를 들어 AND 게이트는 두 입력 비트(00, 01, 10, 11)를 하나의 출력 비트(0, 0, 0, 1)로 변환한다. 출력을 알아도 입력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다. 즉 정보가 지워진다(erasure). 란다우어는 1비트의 정보를 지울 때마다 최소한 다음 에너지가 열로 소산된다는 것을 보였다.

이것이 **란다우어 한계(Landauer limit)**다. 현재 상온()에서 이 값은 약 으로 매우 작다. 그런데 현재 최신 반도체 프로세서가 비트 조작 당 소비하는 에너지는 란다우어 한계의 약 배다. 즉 아직도 이론적 한계와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노트 기록] 란다우어 한계: 1비트 지우기 → (상온). 정보-엔트로피 등가성: 섀넌 엔트로피 (비트 단위)는 물리적 엔트로피 의 관계로 연결된다.

맥스웰의 도깨비 해결: 기억 지우기의 비용

1982년 찰스 베넷(Charles Bennett)은 란다우어의 원리를 이용해 맥스웰의 도깨비 역설을 완전히 해결했다("The Thermodynamics of Computation — A Review", International Journal of Theoretical Physics, 1982). 도깨비가 분자의 위치를 측정하는 행위 자체는 가역적으로 수행할 수 있어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도깨비의 **기억 장치(memory)**는 유한하므로, 다음 측정을 위해서는 이전 측정 결과를 지워야(erase) 한다. 이 지우기 과정이 란다우어 한계만큼의 에너지를 소산하고, 결국 열역학 제2법칙은 위반되지 않는다. 정보의 획득이 아니라 정보의 삭제가 비가역적이며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과정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놀라운 결론에 도달한다. 계산(computation)은 물리적 과정이며, 정보 처리에는 반드시 물리적 에너지 비용이 따른다. 현재 데이터 센터들이 어마어마한 전력을 소비하는 데에는 단순한 기술적 한계뿐 아니라 물리학적 근거가 있는 것이다. 가역 컴퓨팅(reversible computing)의 이론이 바로 이 란다우어 한계를 우회하려는 시도다.


3부: 생물물리학 — 분자 모터와 능동 물질

세포 안의 나노 기계들

이제 비평형 통계역학과 정보 열역학을 바탕으로, 생명체라는 가장 극적인 비평형 시스템을 살펴볼 차례다. 생명체는 외부에서 지속적으로 에너지(음식, 햇빛)를 공급받아 엔트로피가 낮은 고도로 조직화된 구조를 유지한다. 이는 열역학 제2법칙과 모순되지 않는다. 생물체가 엔트로피를 줄이는 대신, 주변 환경으로 훨씬 더 많은 엔트로피를 방출하기 때문이다.

세포 내부에서 물질을 운반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분자 모터(molecular motor)**다. 대표적인 분자 모터로는 세 가지가 있다. **키네신(kinesin)**은 미세소관(microtubule)을 따라 화물을 이동시키는 두 발 달린 단백질로, ATP 하나를 가수분해할 때마다 약 8 nm를 전진한다. **미오신(myosin)**은 근육 수축의 핵심으로, 액틴 필라멘트를 따라 미끄러지며 근육을 수축시킨다. **ATP 합성효소(ATP synthase)**는 세포막을 가로질러 양성자()의 농도 차이(전기화학적 기울기)를 이용해 ATP를 합성하는, 그야말로 생명체 최고의 나노 엔진이다.

이 분자 모터들은 세포질 내부에서 작동하는데, 세포질은 매우 점성이 높은 환경이다. 1단계에서 배운 레이놀즈 수(Reynolds number)를 기억하는가? . 분자 모터의 크기( 수 nm)와 속도()를 생각하면 레이놀즈 수는 이하다. 이는 관성보다 점성이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세계다. 우리가 수영할 때 관성으로 미끄러지는 것과 달리, 분자 모터가 순간 멈추면 초 안에 정지한다. 분자 모터는 관성이 없는 세계에서 작동하는 기계다.

브라운 래칫 — 비평형이 방향성을 만들다

그렇다면 분자 모터는 어떻게 브라운 운동으로 가득 찬 열적 요동 속에서 특정 방향으로만 움직이는가? 여기서 브라운 래칫(Brownian ratchet) 모델이 등장한다. 래칫(ratchet)은 한쪽 방향으로만 회전할 수 있는 톱니바퀴 구조를 말한다. 리차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은 그의 유명한 강의(Feynman Lectures on Physics, Vol. 1, Ch. 46, 1963)에서 열적 요동만으로 래칫이 방향성 있는 운동을 할 수 있는지 분석했고, 열평형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평형 상태의 래칫은 무작위로 앞뒤로 움직일 뿐이다. 열역학 제2법칙과 일치하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분자 모터가 방향성 있는 운동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바로 비평형 조건이다. ATP 가수분해()는 화학 퍼텐셜 차이()를 제공하여 계를 평형에서 멀리 유지한다. 이를 플래시 래칫(flashing ratchet) 또는 비평형 래칫(non-equilibrium ratchet) 모델로 기술할 수 있다. ATP 결합과 가수분해에 따라 단백질의 퍼텐셜 에너지 경관(potential energy landscape)이 주기적으로 변하고, 이 비대칭적 변화가 브라운 운동을 **정류(rectify)**하여 한 방향의 알짜 이동을 만들어낸다.

[노트 기록] 스토케스-아인슈타인 관계식: 구형 입자의 마찰 계수 (스토크스 법칙), 확산 계수 . 온도 , 점도 , 반경 이 주어지면 분자 모터의 확산 거동을 예측할 수 있다.

분자 모터의 효율 — 열역학의 한계와 생명의 정밀함

분자 모터의 열역학적 효율은 어떻게 정의하고 계산하는가? 이를 위해 **비평형 정상 상태(non-equilibrium steady state, NESS)**의 개념이 필요하다. 분자 모터가 일정한 ATP 농도 하에서 작동할 때, 모터는 평균적으로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정상 상태에 있다. 이 때 효율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는 모터가 화물을 이동시키는 데 한 역학적 일이고, 는 ATP 가수분해로부터 공급된 자유 에너지다. 실험적으로 키네신의 효율은 약 25~50%로, 자동차 내연 기관()보다 높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한 열효율과 다른 점은, 분자 모터가 등온 과정(isothermal process)에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즉 카르노 효율()의 제한이 아니라, **화학적 자유 에너지를 역학적 일로 전환하는 변환기(transducer)**로서 작동한다.

능동 물질 — 개체에서 집단으로

분자 하나의 모터를 넘어서면 **능동 물질(active matter)**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능동 물질이란 각 구성 요소가 내부 에너지원을 소비하며 자율적으로 운동하는 물질 계다. 새 떼의 군집 비행(murmuration), 세균의 집단 운동(bacterial swarming), 세포 내 세포골격(cytoskeleton)의 능동적 재편, 심지어 자전거 주행자들의 군집 현상까지 모두 능동 물질 물리학의 범주에 든다. 2013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마틴 카플러스(Martin Karplus) 등의 업적으로 분자 시뮬레이션이 발전하면서, 능동 물질의 집단적 거동을 컴퓨터로 연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능동 물질의 핵심 특성은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다. 개별 구성 요소들 사이의 간단한 국소적 상호작용이 거시적 규모의 복잡한 패턴을 자발적으로 형성한다. 1995년 투마스 빅섹(Tamás Vicsek)은 각 입자가 근방 입자들의 평균 방향으로 자신의 운동 방향을 맞추는 단순한 모델(빅섹 모델, Vicsek model)에서, 입자 밀도와 잡음(noise)에 따라 무질서한 상태에서 질서 있는 집단 운동으로의 **상전이(phase transition)**가 일어남을 발견했다(Physical Review Letters, 1995). 2단계에서 공부한 이징 모델(Ising model)의 자기-비자기 상전이와 개념적으로 유사하지만, 능동 물질의 상전이는 **비평형 상전이(non-equilibrium phase transition)**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여기서는 자유 에너지 최소화가 아니라, 에너지 공급과 소산의 균형이 계의 거동을 결정한다.

[노트 기록] 능동 물질 vs 수동 물질: 수동 콜로이드는 외부 온도에 의한 브라운 운동만 가짐 → FDT 성립. 능동 물질(세균, 분자 모터)은 내부 에너지원으로 자가 추진 → FDT 위반, 유효 온도(effective temperature) 개념 필요. 이것이 능동 물질이 비평형계인 근본 이유다.


종합 — 세 주제의 연결 고리

지금까지 세 가지 큰 주제를 다루었다. 표면적으로는 별개로 보이지만, 이들은 하나의 통일된 주제로 연결된다. 비평형 통계역학은 평형에서 벗어난 계에서 에너지와 정보가 어떻게 흐르는지를 수학적으로 기술한다. 정보 열역학은 정보 처리 자체가 물리적 과정이며 에너지 비용을 수반함을 밝힌다. 생물물리학은 생명체가 바로 이 비평형 원리를 이용해 에너지를 일로, 화학 신호를 물리적 운동으로 변환하며 자기조직화된 구조를 유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세 가지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은 **엔트로피 생산(entropy production)**이다. 모든 비가역 과정은 엔트로피를 생산하고, 그 엔트로피 생산의 방향과 크기가 비평형 계의 거동을 결정한다.


프로젝트 — 스스로 생각하고 분석하는 40분

아래 세 가지 프로젝트는 개념적 이해, 수리적 분석, 물리적 직관을 동시에 요구한다. 정답은 없다. 스스로 논리를 전개하고 계산하여 결론을 내려보라.


Project 1: 브라운 운동과 확산의 열역학

어떤 생화학 실험실에서 물(점도 , ) 속에 반지름 인 구형 나노입자를 준비했다. 이 나노입자는 세포 내부의 mRNA 전달 나노 운반체로 사용될 예정이다.

(1-1) 스토크스-아인슈타인 관계식을 이용하여 이 나노입자의 마찰 계수 와 확산 계수 를 계산하라. (필요한 상수: , )

(1-2) 이 나노입자가 1차원 브라운 운동을 한다고 가정할 때, 평균 제곱 변위(mean squared displacement)는 로 주어진다. 세포 한 변의 길이가 약 라 할 때, 나노입자가 순수한 확산만으로 세포 한쪽 끝에서 반대쪽까지 이동하는 데 평균적으로 얼마나 걸리는지 계산하라.

(1-3) 앞의 계산 결과를 토대로, 세포가 만약 분자 모터 없이 순수한 확산에만 의존하여 물질을 수송한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 논하라. 인간 뉴런(신경세포)의 축삭돌기(axon)는 최대 1 m까지 길어질 수 있는데, 이 경우는 어떤가?

(1-4) (도전) 요동-소산 정리에 따르면 다. 이 식의 양변을 부터 까지 시간에 대해 이중 적분하여 임을 유도하고, 이로부터 가 어떻게 나오는지 그 논리적 흐름을 서술하라.


Project 2: 란다우어 한계와 현대 컴퓨터

한 데이터 센터에 최신 GPU 클러스터가 있다. 이 시스템은 초당 번의 부동소수점 연산(FLOPS)을 수행하며, 각 연산마다 평균 1비트의 정보를 지운다고 가정하자. 데이터 센터의 온도는 로 유지된다.

(2-1) 란다우어 한계()에 따른 이론적 최소 전력 소비를 계산하라.

(2-2) 현재 최신 GPU(예: NVIDIA H100)가 같은 연산량에서 실제로 소비하는 전력이 약 라면, 이론적 란다우어 한계 대비 실제 소비는 몇 배인가? 이 차이의 물리적 이유를 두 가지 이상 논하라.

(2-3) **가역 컴퓨팅(reversible computing)**은 논리적으로 가역적인 연산만을 사용하여 란다우어 한계를 우회하려는 시도다. 가역 컴퓨팅이 가능하다면 어떤 물리적 조건이 필요한지 논하라. 또한 현실에서 완벽한 가역 컴퓨팅이 불가능한 이유를 열역학적 관점에서 서술하라.

(2-4) 맥스웰의 도깨비가 실라르드 엔진을 이용하여 1초에 번 측정과 기억 초기화를 반복한다고 하자. 이 도깨비가 환경에 방출하는 최소 열(heat)을 계산하고, 이를 통해 열역학 제2법칙이 위반되지 않음을 수치적으로 확인하라.


Project 3: 분자 모터 효율 분석

키네신 분자 모터에 관한 다음 실험 데이터가 있다. 키네신은 미세소관을 따라 이동하며, ATP 한 분자를 가수분해할 때마다 약 전진한다. 세포 내 조건에서 ATP 가수분해의 자유 에너지 변화는 ()다. 키네신이 최대 지탱할 수 있는 힘(stall force)은 ()이다.

(3-1) 키네신이 ATP 1분자당 화물에 하는 최대 역학적 일()을 계산하라. 단위에 주의하라.

(3-2) 키네신의 열역학적 최대 효율 를 계산하라. 를 줄(J) 단위로 변환할 때 를 이용하라.

(3-3) 카르노 효율은 두 열원의 온도 차이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키네신은 등온 과정에서 작동한다. 키네신의 효율이 카르노 효율과 어떤 관계인지 논하라. 키네신의 에너지 변환은 열기관(heat engine) 방식인가, 화학-역학 변환기(chemo-mechanical transducer) 방식인가?

(3-4) (심화) 비평형 정상 상태에서 키네신의 엔트로피 생산율(entropy production rate) 는 다음으로 정의된다.

여기서 는 초당 ATP 가수분해 횟수, 는 모터의 속도(), 는 외부에서 가해지는 부하(load force)다. 부하 가 0일 때와 일 때 각각 엔트로피 생산율을 비교하여, 어느 조건에서 엔트로피 생산이 더 많은지,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물리적으로 논하라. (, 로 가정)


지금까지 다룬 세 주제는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에 있는 연구 분야들이다. 비평형 통계역학은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많고, 정보 열역학은 양자 컴퓨터 연구와 직결되며, 능동 물질 물리학은 합성생물학과 연결되어 인공 세포를 만드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프로젝트를 풀며 막히는 지점이 생기면, 그 막힘 자체가 당신이 이 분야의 미해결 문제에 다가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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